러, 2차대전 후 첫 본토 뚫리는 '굴욕'...겉으론 "큰일 아냐" 태연한 척
정작 접경지엔 대테러 작전 체제 발령 '비상'...러군 총참모장 경질설도
고전하던 우크라, 美대선 앞두고 "절묘한 시점에 반격의지 과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로 깜짝 진격하는 대담한 작전을 펼치면서, 2년 반을 향해가는 우크라전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올 들어 러시아의 반격에 고전하던 우크라이나는 개전 이후 최대 규모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며 모처럼 사기를 끌어올렸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종전협상에서 유리한 카드를 확보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러시아는 표면적으로는 상황이 안정됐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에 허를 찔린 지 닷새째인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남서부 접경 지역에 대테러 작전 체제를 발령하고 해당 지역 주민들을 대거 대피시키는 등 비상 사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일각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한 것과 관련해 군 수장 경질설까지 제기됐다.

국가안보회의 소집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

(국가안보회의 소집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 우크라, 러 본토서 교전 지속...젤렌스키 "침략자 압박하겠다"

로이터·AF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6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주(州)로 진격해 교전을 시작한 지 닷새째인 이날도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는 격렬한 전투를 이어갔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전투가 쿠르스크주 말라야 로크냐, 올고프카, 이바시코프스코예 등 국경에서 10∼20㎞ 안쪽에 있는 지역에서 집중됐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군사 블로거들은 우크라이나군이 이날 쿠르스크주의 플레호보를 추가로 점령했다고 말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해당 지역의 원자력 발전소와 가스관 등 에너지 기반 시설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알렉세이 스미르노프 쿠르스크 주지사 대행은 우크라이나 드론 잔해가 전날 변전소 시설물로 추락해 화재가 발생했다면서, 쿠르스크 원전 있는 쿠르차토프를 비롯한 일부 접경지에서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의 61기계화여단은 전날 밤 가스 수송 중요 거점 쿠르스크 도시 수드자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텔레그램을 통해 밝히면서 현장에 있는 자국군인들의 영상을 공개했다.

수드자는 러시아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보내는 '우렌고이-포마리-우즈고로드' 가스관의 마지막 수송 측정소가 있는 곳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자국군이 러시아 본토로 진격해 군사작전 중임을 처음으로 공개 언급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0일 저녁 정례 연설에서 "침략자(러시아)의 영토로 전쟁을 밀어내기 위한 우리 행동"에 대해 보고 받았다면서 "침략자에게 필요한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8일 "러시아가 우리 영토에 전쟁을 몰고 왔으니 그들도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느껴봐야 한다"고 말한 것 외에는 러시아 본토 공격에 직접 언급을 삼가왔다.

◇ 러, 대테러체재 발령·대규모 피란 등 '비상'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우크라이나군의 침공 시도를 계속 격퇴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등 상황이 안정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은 지난 7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소집한 회의에서 "적군이 더 깊은 영토로 진격하는 것을 막았다"고 보고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심각한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 반테러위원회(NAC) 이날 쿠르스크, 벨고로드, 브랸스크주(州) 등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남서부 접경지역에 전날부터 대테러 작전체제를 발령했다.

이에 따라 대테러 작전을 위한 비상상황에서 보안대와 군이 전면적인 권한을 가지고 개인의 이동·통신 제한 조치를 내리는 등 보안을 강화하게 된다.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은 이날 러시아 비상사태부 관계자를 인용해 지금까지 총 7만6천명 이상이 쿠르스크 국경지대에서 대피했다고 보도했다.

전투가 벌어지는 국경지역에 긴급 구호물자가 이송됐으며,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추가 열차편이 투입됐다. 접경지에서 열차편으로 이날 모스크바에 도착한 한 여성은 AFP에 익명을 전제로 "전쟁이 닥쳐왔다"고 말했다.

러시아 군사블로거와 전문가들도 상황이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친러시아 군사블로거 유리 포돌랴카는 "위험한 적을 상대로 전면적인 군사작전이 진행 중"이라며 심각성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퇴역 장성인 러시아 의회 의원 안드레이 구룰레프는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정신 차리고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이른 시일 안에 쫓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사실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영토 일부를 적에게 내주게 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의 지원을 받는 러시아인 전투원들이 지난해 러시아 벨고로드 지역으로 일시적으로 침입한 적이 있지만 가까운 국경 마을까지 닿지 못하고 패퇴했다고 WSJ은 전했다.

이런 가운데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경질설까지 흘러나온다고 뉴스위크가 보도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 지역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첩보를 무시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지난 8일 푸틴 대통령이 소집한 안보 회의에 불참해 의구심을 키웠다.

◇ 우크라, 러 영토 진격으로 "종전협상에 유리한 패 쥐었다"

우크라이나로서는 그간 러시아에 내줬던 전황 주도권을 단번에 빼앗아 오며 사기를 한껏 끌어 올린 모습이다.

우크라이나군은 그동안 서방의 무기 지원 지연으로 병력과 무기 부족에 시달리며 북동부 제2 도시 하르키우를 겨냥한 러시아군의 집중 공세에 고전해왔다.

하지만 2022년 2월 개전 이후 러시아 본토를 겨냥한 최대 공격인 이번 급습으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우크라이나는 또한 이번 공격으로 반격 의지를 강조함으로써 전쟁 장기화로 잦아들었던 국제사회의 관심을 다시 환기하고, 지지부진해졌던 서방의 지원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선임연구원 프란츠 스테판 가디는 미국 워싱턴포스트(WP) 이번 공격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공격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고 적의 영토에서도 복잡한 작전을 수행 가능다고 서방과 동맹국에 보내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는 또한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에도 대비할 수 있게 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꾸준히 지원해왔고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이러한 정책을 계승할 것으로 보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 시 러시아와 협상해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본토 공격으로 의미 있는 전과를 거머쥐면서 러시아와 종전 협상을 하게 되더라도 유리한 카드를 쥐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우크라이나 주재 서방 외교관은 이번 러시아 본토 급습이 미국 대선 전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국제사회 이슈로 떠올릴 수 있는 "완벽한 시점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외교관은 "이번 작전 이전에 우크라이나는 협상에 들고나올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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