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美공장 투자 확대 발표...'인텔 협력 압박 피하기' 등 거론
관세 폭탄 속 반도체업계 투자 향방 주목..."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대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향후 전략에도 이목이 쏠린다.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쏟아내는 관세 부과, 보조금 지연 등의 반도체 겨냥 정책들에 대해 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 확대로 돌파구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기업들도 TSMC와 같은 전략을 꾀할지 관심이 쏠린다.
◇ TSMC, 미국에 총 1천650억달러 투자 예정
4일 업계에 따르면 웨이저자 TSMC 회장은 3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한 뒤 미국에 1천억 달러(약 145조9천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TSMC는 2020년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고, 이후 투자 규모를 650억달러로 확대했다. 이번 신규 투자 계획 발표로 투자액은 총 1천650억달러로 늘어난다.
TSMC 애리조나 1공장은 최근 4나노 제품 양산을 시작했고, 2공장은 2027년 3나노 제품을 양산할 계획이다. 3공장은 2027년 말에 생산 설비를 설치할 예정이다.
이 같은 TSMC의 투자 계획 발표에 트럼프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인공지능(AI) 반도체는 바로 이곳 미국에서 만들어질 것이며 상당 부분을 TSMC가 만들 것"이라면서 "이것은 경제 안보는 물론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말했다.
TSMC의 미국 현지 투자 확대는 관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들어오는 반도체에 최소 2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예고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도 TSMC의 미국 신규 투자에 대해 "그들은 관세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반도체 업계에는 주요 '큰손' 고객사인 빅테크 업체들이 대거 모인 전략 시장이다.
그런데 미국으로 수출하는 반도체에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현지 생산 강화가 대응 방안으로 거론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TSMC의 투자 결정은 정치적, 경제적 계산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업계는 평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 정부로부터 TSMC가 '인텔 구하기' 압박을 받으면서 국부나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컸을 것"이라며 "(인텔 협력 압박의) 면피용으로 대규모 투자에 나선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정부가 현재 고전하는 인텔을 살리기 위해 TSMC를 끌어들여 인수 또는 기술 합작 등을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대만 언론은 미국 정부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반독점 조사 카드 등을 내세워 TSMC를 압박할 수 있고, 결국 TSMC가 타협에 나설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TSMC가 미국 내 투자를 대폭 확대하면서 칩 생산능력(캐파)을 대폭 시장을 선점하면 경쟁사에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TSMC가 애리조나에 제조시설 5개를 지으면 미국의 IT 업체의 주문을 모두 받을 수 있는 양이 될 것"이라며 "TSMC를 추격하는 삼성전자에는 좋은 시그널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주문도 없는데 공장을 지어서 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고, TSMC에 버금가는 기술력 확보가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 TSMC 투자, 삼성·SK도 같은 전략 취할까...아직 '신중 모드'
TSMC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글로벌 반도체 업계 처음으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으면서 미국에 투자하는 업체들의 고심도 깊어질 전망이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TSMC가 2나노 이하 첨단은 대만에서 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변경하고 미국에 2나노 이하 공장을 만드는 것으로 노선을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의 수요가 늘어나고 중국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안보 우산' 차원의 계산이 함께 작용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TSMC가 한발 앞섰다"고 평가하며 "삼성전자 역시 미국 투자 확대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미국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향후 투자를 확대할지 이목이 쏠린다.
이미 미국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 건설에 삼성전자는 370억달러(약 54조원) 이상을, SK하이닉스는 38억7천만달러(약 5조6천억원을)를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내년 가동 개시를 목표로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반도체 패키징 생산기지를 지어 2028년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두 회사는 일단 미국 투자 계획을 변함 없이 그대로 추진하면서도 통상 정책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다각도로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있다.
다만 신규 공장을 설립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절차가 까다로워 업계는 현지 투자 확대에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또 TSMC와 국내 업계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대상 관세를 예고만 했을 뿐 아직 확정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TSMC의 투자 결정이 당장 국내 업계의 투자 관련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본다.
TSMC의 경우 관세 부담뿐 아니라 인텔과의 협력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기술 유출 우려와 미국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투자를 결정했다는 해석도 나오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관세 정책 등이 확정된 게 없어서 좀 더 구체화 됐을 때 투자에 미칠 여러 영향을 파악해보고 방향성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도 "TSMC의 미국 투자는 경제 안보적으로도 활용되는 측면이 있어 국내 기업과 똑같이 비교하기는 어렵다"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투자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다만 "TSMC가 미국에 투자를 늘리면 국내 기업 입장에서 고객을 확보하는 데 우려가 생길 수 있다"면서도 "이미 미국 고객들이 TSMC의 고객이기도 해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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