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에 세계 지도자들이 몰두하는 사이, 러시아가 유럽 국경 인근에서 조용히 군사 활동을 확대하고 있어 유럽 각국이 긴장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핀란드 국경에서 약 160km 떨어진 러시아 페트로자보츠크 시에서는 군 공병대가 대규모 군 기지를 확장하고 있으며, 수년 내 수만 명 규모 병력을 지휘할 새로운 군 사령부를 설립할 계획이다. 서방 군사·정보 당국에 따르면 이들 병력은 현재 우크라이나 전선에 배치돼 있으나, 향후 NATO를 상대로 하는 러시아군의 주력이 될 전망이다. 크렘린은 군사 모집을 확대하고, 무기 생산을 늘리며, 국경 지역의 철도망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1940년 소련과의 전쟁에서 영토를 빼앗긴 후 오랫동안 모스크바와의 충돌을 피해온 핀란드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NATO에 가입했으며, 현재 전자 방어 시설과 철조망으로 국경을 요새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휴전 압박을 가하며 러시아와의 관계 복원을 시도하는 가운데, 러시아의 추가 침공 가능성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경고한 NATO 대상 침공 가능성에 대해 "조금도 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 내 군사 전문가들은 핀란드 국경 인근 활동을 NATO와의 충돌을 대비한 준비 작업으로 해석하고 있다. 모스크바 소재 국방 싱크탱크인 전략기술분석센터(CAST) 소장 루슬란 푸코프는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복귀한 병력은 자신들이 적으로 인식하는 국가를 바라보게 될 것"이라며 "지난 10년간의 흐름을 보면, 러시아는 NATO와의 충돌을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장관 안드레이 벨로우소프도 최근 회의에서 "군은 NATO와의 충돌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러시아가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서방의 주장은 과장"이라며 긴장의 책임을 NATO에 돌렸다.
푸틴 대통령은 군 병력을 전쟁 전 100만 명에서 150만 명으로 확대할 것을 지시했다. 올해 러시아의 군사비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6%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이는 전쟁 전 3.6%에서 대폭 상승한 수치다. 참고로, 미국은 지난해 군사비로 GDP의 3.4%, EU 국가는 평균 2.1%를 지출했다.
무기 생산 확대...빠른 재건 속도
군사비 확대로 러시아 방산업체들은 생산 능력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생산 라인 확장 및 신규 시설 건설이 이뤄지고 있다. 서방 정보당국에 따르면, 2021년 러시아는 주력 전차 T-90M을 연간 40대 생산했으나, 현재는 연간 약 300대를 생산하고 있다. 이 전차들은 대부분 러시아 본토에 비축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보내지지 않고 있다.
포병 및 탄약 생산은 올해 약 20%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드론의 품질과 생산량 역시 크게 향상됐다.
미국 유럽군 사령관 크리스토퍼 카볼리 장군은 "러시아군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재건되고 있으며, 전쟁 초기에 비해 현재 병력 규모가 더 크다"고 밝혔다. 덴마크 정보기관은 최근 보고서에서 "NATO의 약점을 감지할 경우, 러시아가 5년 내 유럽에서 대규모 전쟁을 시작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NATO 회원국들은 국경을 따라 탱크 방어용 참호를 파고, '드래곤스 티스(Dragon's Teeth)'라 불리는 대전차 장애물을 설치하고 있다.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대인지뢰 금지 조약에서도 탈퇴했다.
"시간이 많지 않다"...서방 결속 강조
폴란드 국방장관 블라디슬라프 코시니아크-카미쉬는 "우리는 강력한 동맹과 명확한 지휘 체계, 잘 무장된 군대를 구축해야 한다"며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러시아는 DHL 항공기에 방화 장치를 설치하려는 음모, 독일 방산업체 CEO 암살 기도 등 서방 내 비밀 공작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 정보당국 관계자는 "러시아는 에스토니아와 같은 작은 NATO 국가를 대상으로 연합의 결속력을 시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가 NATO를 상대로 본격적인 군사 행동을 벌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마이클 코프먼 연구원은 "제한적 작전은 몇 년 내 가능할 수 있으며, 대규모 전쟁은 7~10년 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병력 확장에 맞춰 인프라도 강화
러시아는 병력 확대에 대비해 군 조직을 재편하고 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새로운 군 관할 구역을 만들었으며, 벨라루스와 철도 및 도로망을 통합해 병참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가장 많은 병력 확충은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를 마주하는 레닌그라드 군관구에서 이뤄진다. 기존 여단은 약 1만 명 규모의 사단으로 증강된다.
핀란드 육군 참모차장 사미 누르미 소장은 "러시아군은 전략과 전술 혁신을 시도하더라도 결국 숫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2022년과 2025년 위성사진에 따르면, 핀란드 국경 인근 카멘카와 스푸트니크 군사기지 모두 병영 및 장비 저장시설이 확장됐다. 러시아는 페트로자보츠크 일대에 신규 병영, 훈련장, 탄약고, 철도 시설을 추가 건설하고 있다.
핀란드 국방대학의 유하 쿠콜라 교수는 "러시아-핀란드 국경에는 기갑 부대를 통과시킬 수 있는 지점이 약 12곳 있다"며 "철도 기지가 새로 건설되거나 개보수되는 곳은 특히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19세기 군병원을 현대화해 병력 수용 능력을 늘리고 있다.
병력 충원 박차...군이 새로운 '엘리트'로 부상
최근 러시아에서는 연방 및 지방 정부 차원의 일시적 입대 보너스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군 모집이 급증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입대 보너스가 연간 평균 소득을 초과하는 약 2만 달러에 달하고 있다.
핀란드 중앙은행 산하 신흥경제연구소 소장 이카 코르호넨은 "일회성 지급금이 대폭 올라 많은 이들이 입대를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가 매달 약 3만 명의 병력을 새로 모집하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으며, 일부 동유럽 정보기관은 이 수치가 4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늘어난 병력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순환 근무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 본토 내 신규 부대 창설에도 투입되고 있다.
발트방위대학 러시아 전문가 다이비스 페트라이티스는 "군은 이제 새로운 엘리트 계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향후 병력 충원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국경 배치 병력에 최신 장비를 우선 공급할 계획이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선에는 대부분 구형 소련 시대 장비가 투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