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 사례... '기후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림자

미국의 여러 지역이 자연재해로 파괴된 뒤 수년간 복구 과정을 거치며, 그 지역은 예전과 완전히 다른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이면에는 저소득층의 이탈과 새로운 부유층의 유입이라는 구조적 변동이 자리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 보도했다 

WSJ의 보도에 따르면, 플로리다 팬핸들 지역의 해안 도시 파나마시티와, 캘리포니아 북부 시에라 네바다 산맥 자락의 파라다이스는 대표적인 사례다. 2018년 허리케인 마이클과 캠프 파이어(Camp Fire)로 각각 심각한 피해를 입은 두 도시는, 복구 이후 더 부유하고 배타적인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재난 → 투자 → 고급화'의 순환

재난 이후, 정부 지원금과 보험금이 유입되며 새로운 투자가 지역에 몰렸다. 주택은 더 크고 견고하게 재건되었고, 인프라가 정비되며 도시는 새로운 얼굴을 갖게 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임대료는 폭등하고, 보험료는 치솟았으며, 건축 기준은 강화되었다. 저소득층 거주민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새롭게 지어진 고급스러운 주택

(새롭게 지어진 고급스러운 주택. WSJ 캡쳐)

이 같은 현상은 학계에서 **'기후 젠트리피케이션'(climate gentrification)**으로 정의되며, 자연재해와 기후 변화가 도시의 사회경제적 구성을 바꾸는 구조를 지칭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의 캐서린 맥코넬 교수는 "재난은 기존의 사회 불평등을 더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이 미 인구조사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재난 피해 지역의 중간소득이 상승하고, 빈곤율이 낮아지는 동시에 저소득층의 비율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플로리다 파나마시티 - 해변 도시의 두 얼굴

2018년 허리케인 마이클은 플로리다 베이카운티에 속한 파나마시티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약 4만5천 채가 손상되거나 파괴됐으며, 상당수는 노후화된 주택이었다. 특히 흑인 및 저소득층 비율이 높은 글렌우드(Glenwood)와 밀빌(Millville) 지역은 보험 미가입 가구가 많았고, 세대 간 상속으로 등기 없이 거주하던 사례도 많아 재난 지원조차 받기 어려웠다.

피해를 입은 세입자들은 떠났고, 재건 여력이 없는 주택 소유자들은 집을 헐값에 처분하거나 방치했다. 현재도 일부 지역은 폐가로 남아 있다.

반면, 역사적인 중산층 지역 '더 코브(The Cove)'는 보험금과 외부 투자로 빠르게 복구되며 고급 주택지로 변모했다. 이전에는 $300에 세를 주던 낡은 주택이 수리 후 $1,250로 재임대됐고, 나중에는 $210,000에 매각됐다. 부동산 투자자들은 해당 지역을 적극적으로 매입하며 시세 상승을 주도했다.

파나마시티의 다운타운도 과거와는 달리 고급 식당, 부티크, 호텔 등이 들어서며 약 $5,000만의 민간 투자가 유입됐다. 신도시 '스위트베이(SweetBay)'에는 중서부에서 이주한 고소득 가구들이 들어오고 있다.

캘리포니아 파라다이스 - 느리지만 고급화된 재건

2018년 11월 발생한 캠프 파이어는 캘리포니아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다. 파라다이스 지역은 전체 구조물의 90%가 파괴되었으며, 80명 이상이 숨졌다. 병원과 상점, 극장도 문을 닫았다.

주택 소유자들 중 상당수는 저렴한 주택에 주택담보대출 없이 거주하며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던 경우였다. 고비용의 재건 비용과 치솟는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한 주민들은 터전을 떠나야 했다.

재난 이후, 해당 지역의 인구는 34% 감소했다. 파라다이스는 화재 전 26,500명이었으나, 직후 약 3,000명까지 줄었다가 최근 약 11,000명 수준으로 회복된 상태다.

한편, 새로 이주한 주민들-대체로 중산층 이상의 고소득 가구-은 화재에 강한 자재로 지어진 최신 주택을 구입하거나 신축하고 있다. 태양광 패널, 방화 벤트, 스타링크 인터넷이 갖춰진 2,000sqft 주택이 40만 달러 이상에 거래되고 있으며, 파라다이스의 부동산 중개인 폴린 호헨타너는 "불이 난 뒤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며 부동산 시장 활황을 전했다.

재난 이후의 도시는 누구를 위한 공간이 되었는가

파라다이스와 파나마시티 두 지역 모두에서 저소득층의 이탈과 부유층의 유입, 그리고 부동산 가격 상승이 공통적으로 관찰되고 있다. 각 지역의 재건은 도시 미관과 내구성 면에서는 개선됐지만, 원래 살던 주민들이 가격에 밀려나거나 돌아오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 주민은 "이제 더 이상 해변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다른 주민은 "나는 이제 거기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이는 단순한 지역개발이 아닌, 기후 재난이 계층 이동을 야기하는 구조적 현상임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향후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더욱 잦아질수록, 비슷한 방식의 지역 격차와 이주 압력이 미국 전역에서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