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가 보수 성향 학문을 지원하는 새로운 연구센터 설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에 제기한 '좌편향' 비판에 대응하려는 동시에, 학내 '관점의 다양성(viewpoint diversity)'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하버드는 이 구상을 몇 년 전부터 내부적으로 논의해왔으며, 2023년 말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캠퍼스를 혼란에 빠뜨린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해당 센터는 스탠퍼드대의 후버 연구소(Hoover Institution)를 모델로 삼을 수 있으며, 설립 비용은 5억~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버드 대변인은 이 구상이 특정 정파를 위한 것이 아니며, "폭넓은 관점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증거 기반 사고와 상반된 의견과의 토론을 장려하는 논리적 모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관점 다양성을 증진하고 지원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며, 학교 차원에서 해당 구상 추진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하버드가 2024년 실시한 자체 조사에서는 졸업 예정자 중 단 3분의 1만이 논란이 될 만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고 답했고, 2023년 학생 신문 조사에서는 하버드대 교수진 중 단 3%만이 자신을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라 밝혔다.
이에 따라 앨런 가버 하버드 총장은 학내 토론 문화를 되살리기 위한 '지적 활력(Intellectual Vitality)'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그는 학생들이 자기 검열 없이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와의 충돌...자율성과 연방 자금 놓고 대치
이러한 움직임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갈등 속에서 나왔다. 백악관은 하버드가 반유대주의를 용인하고,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을 통해 차별적 문화를 조장한다고 비판하며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연방 자금을 동결 또는 철회했다. 세금 면제 지위 박탈, 외국인 유학생 등록 제한 등도 압박 수단으로 동원됐다.
하버드는 이에 맞서 연방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관련 공청회는 이번 달 중 열릴 예정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하버드 간의 광범위한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으며, 행정부는 하버드 측이 제안한 초기 협상안을 거절하고, 새로운 제안을 검토 중이다.
협상의 주요 쟁점은 학생 선발, 교수 임용, 교육 내용에 대한 자율성 문제다. 하버드는 이들 사안에 있어 연방 정부의 개입을 거부하고 있으며, 보수 성향 센터 설립 역시 학문적 독립성을 유지한 채 관점 다양성을 확대하려는 내부 해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보수 학문 센터, 정치적 '화해'일까, '눈속임'일까
트럼프 행정부 측은 이 같은 센터 설립이 단지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행정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는 실질적 협상의 일부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나 린다 맥마흔 교육부 장관은 이번 주 열린 내각회의에서 하버드 및 콜럼비아대와의 협상이 진전을 보이고 있다며 "생각만큼 빨리 마무리되진 않았지만,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사실, 관점 다양성을 추구하는 센터 설립 아이디어는 이미 2020년 이전부터 논의돼 왔다. 당시 니틴 노리아 하버드 경영대학원장은 이와 유사한 구상을 여러 기부자와 공유했으며, 현재는 존 매닝 교무부총장이 주요 기획자로 나서 일부 기부자들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하버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하버드 코퍼레이션 일부 구성원들도 "보수 센터 설립은 과도하지 않으며, 학문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건전한 시각 다양성을 증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스탠퍼드 후버 연구소 모델, 전국 대학가로 확산 중
이번 하버드 구상의 모델로 언급되는 후버 연구소는 자유시장, 작은 정부 등을 지지하는 보수적 싱크탱크로, 스탠퍼드대 캠퍼스 내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 10여 년간 미국 내 여러 주립대학에서도 고전적 자유주의와 서구 문명 연구를 중심으로 한 학술 기관이 다수 설립돼왔다.
예컨대 애리조나주립대는 2016년 시민·경제 사상 및 리더십 학부를 설립했고, 플로리다대, 노스캐롤라이나대, 예일대 등도 고전문헌 중심 교육과 토론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애리조나주립대 설립자 폴 카레세 교수는 "이 흐름은 하나의 전국적인 개혁운동"이라며, 정치적 성향을 떠나 고전적 자유주의 교육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공립대뿐 아니라 일부 사립대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버드는 여전히 난관에 직면해 있다. 캠퍼스 내에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어떤 '타협'도 거부하는 학생·교수·동문들의 반발이 존재하며, 연방정부와의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가운데 보수 학문 센터 설립은 양측 간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전략적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도가 실제로 관점 다양성과 토론 문화의 회복으로 이어질지, 정치적 갈등의 또 다른 불씨로 남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