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10달러 비자 수수료에 엇갈린 반응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H-1B 전문직 취업비자 신청 수수료를 10달러로 상향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실리콘밸리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 보도했다. 

WSJ 에 따르면, 일부는 "무분별한 저임금 비자 남용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스타트업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해외 고용 확대를 부추길 것"이라며 우려를 표한다.

초기 혼란, 그리고 진정

지난 주말,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H-1B 비자 소지 직원들에게 해외 출장 중 즉시 귀국하라는 지침을 내리며 긴장이 고조됐다. 그러나 행정부가 "새 수수료는 내년부터 신규 신청에만 적용된다"고 해명하면서 혼란은 다소 진정됐다.

트럼프 H1B 비자 수수료 상향 행정명령

(트럼프 H1B 비자 수수료 상향 행정명령. 블룸버그)

이후 일부 업계 인사들은 신중한 긍정 평가를 내놓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샘 알트먼 오픈AI CEO는 CNBC 공동 인터뷰에서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밝혔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회장은 X(구 트위터)에 "훌륭한 해결책"이라며 "실질적 가치가 있는 일자리에만 지원하도록 유도해 H-1B 추첨제도 불필요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빅테크는 감당, 스타트업은 부담

리플링 CEO 파커 콘래드는 "10만 달러를 내고 확실히 비자를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지불하겠다"며 올해 64건의 신청 중 12건만 승인된 현실을 지적했다.

그러나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반발이 적지 않다. AI 인프라 스타트업 아우터바운즈의 사빈 고얄 창업자는 "직원 중 12%가 H-1B 소지자"라며 "빅테크와 달리 초기 단계 스타트업은 자원이 제한적"이라고 토로했다. 전 아마존 부사장 에단 에반스도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선택할 수 있지만 스타트업은 그럴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해외 고용 촉진 우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미국 일자리 창출보다 해외 인재 채용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도는 H-1B 최대 공급국으로, 이미 많은 미국 기업이 인도에 연구개발 센터를 운영 중이다.

챕터(Chapter) 창업자 코비 블루멘펠트-간츠는 "기업들이 10만 달러 수수료를 피하고자 동일 인력을 인도에서 저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적 대응과 불확실성

일부 대기업들은 이번 조치에 대한 소송 참여를 검토 중이나, 최근 대법원의 '전국적 차단 권한 제한' 판례로 인해 승소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국가 이익상 필요 인력"에 대한 예외 규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AI 연구자 등 전략적 분야 인력에게는 면제 혜택이 주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실리콘밸리의 H-1B 의존

H-1B 프로그램은 최근 수년간 승인 건수의 3분의 2가 컴퓨터 관련 직종일 만큼 기술 산업 의존도가 높다.

  • 아마존: H-1B 승인 1만 2천 건 이상
  • 마이크로소프트·메타·애플·구글: 각 4천~5천 건
  • IT 아웃소싱 및 서비스 기업: 총 2만 건

업계 관계자들은 "엔지니어가 부족한 상황에서 H-1B는 필수"라며 "수수료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경우 차세대 나델라(마이크로소프트 CEO)나 머스크 같은 인재 유입이 막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H-1B 수수료 인상은 저임금 비자 남용 억제라는 목표와 글로벌 인재 유치 저해라는 위험을 동시에 안고 있다. 빅테크에는 감당 가능한 비용일 수 있지만, 스타트업과 미래 창업 인재들에게는 치명적인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