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IMF 지원 기반 다지며 자유시장 개혁 추진 탄력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26일(일) 실시된 선거에서 결정적인 정치적 승리를 거두며, 의회 내 입지를 강화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지하는 '자유시장 혁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전체 투표의 99% 이상이 집계된 가운데, 밀레이의 정당 '자유가 전진한다(Freedom Advances)'는 전국 득표율 약 41%를 기록하며 의회 내 의석 수를 두 배 이상으로 늘렸다. 이로써 그의 정당과 연합세력은 상·하원 모두에서 최소 3분의 1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유지하고 강력한 개혁령을 방어할 수 있는 임계치를 넘겼다.
예상을 웃도는 이번 결과는, 지난해 긴축정책과 경기침체로 이어진 사회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밀레이에게 정치적 동력을 다시 안겨주었다. 또한 이번 성과는 그의 긴축 실험의 지속 가능성을 지켜보던 미국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에도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했다.
달러 표시 아르헨티나 국채는 월요일 급등했고, 밀레이의 자유시장 개혁 추진력이 강화되자 미국에 상장된 아르헨티나 주식도 개장 전 거래에서 상승세를 보였다.
밀레이는 일요일 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오늘은 위대한 아르헨티나를 건설하기 위한 출발점입니다"고 하며 "이번 결과는 다름 아닌 우리가 2023년에 국민과 맺은 약속의 재확인입니다. 국민의 의지가 이 나라의 운명을 돌이킬 수 없게 바꿔놓았습니다."고 했다.
미국은 이번 달 아르헨티나 통화 안정을 위해 2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으며, 민간은행 및 국부펀드에서 추가로 200억 달러를 조달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밀레이의 선거 성과가 자신의 지원 지속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기준임을 분명히 해왔다.
그는 "하비에르 밀레이가 이긴 건 대단한 일입니다. 그는 훌륭한 '트럼프 지명 후보'로서 우리 모두를 빛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월요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에 이렇게 적었다. "그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아르헨티나 국민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고 했다.
'전기톱을 든 경제학자', 충격요법으로 나라를 재건하다
밀레이는 급진적 변화를 약속하며 집권했다. 그는 수십 년간 이어진 초인플레이션과 경제 파탄을 끝내기 위해 과감한 지출 삭감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스스로를 '무정부 자본주의자(anarcho-capitalist)'라고 부르며, 대중 연설 시 전기톱을 들고 등장해 공공지출 삭감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복잡한 복수 환율 체계를 단일화하고 만성적 재정 적자를 억제하기 위해 페소화를 대폭 평가절하했다. 또한 에너지 보조금을 줄이고 공공 부문 직원 수만 명을 해고했다. 이러한 정책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균형 예산을 달성했으며, 2년 전 200%에 달하던 인플레이션은 32% 수준으로 낮아졌다.
'충격요법(shock therapy)'이라 불리는 이 개혁은 라틴아메리카 3위 경제국의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시켰으나, 여전히 국민 3명 중 1명은 빈곤 상태에 있다. 선거 전 여론조사는 그의 정당이 참패할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다수의 유권자들은 좌파 페론주의 정권으로의 회귀를 '악몽'으로 여겼다.
20세 법학도 레안드로 페드로소는 "밀레이는 나라를 다시 세우고 있습니다, 제 주변의 많은 친구와 가족이 과거 위기 때 나라를 떠났지만, 저는 떠나지 않기로 했습니다. 유럽에 갈 기회도 있었지만, 저는 제 나라에 걸었습니다."고 했다.
의회 내 영향력 강화, 반대 세력 견제 가능
밀레이의 정당은 선거 전 하원 257석 중 37석, 상원 72석 중 6석을 보유해 각각 15%와 10%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로 두 배 이상 의석을 확보하며, 대통령령을 유지하고 반대 세력의 입법 저지를 막을 수 있는 '거부권 블록'을 확보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 빈민가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예수회 사제 로드리고 사라사가"아무도 이런 놀라운 반등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그 지역은 아르헨티나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고, 유권자의 40%가 몰려 있는 핵심 지역입니다."고 했다.
페론주의 야당은 이번 선거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후안·에바 페론 부부가 1940년대 창당한 이 세력은 오랫동안 복지국가 모델을 대표해왔으나, 인플레이션이 완화된 상황에서도 불만을 가진 중도층 유권자들을 결집시키는 데 실패했다.
금융시장 안도... "정치적 정당성과 동력 확보"
이번 승리는 투자자들에게 시간을 벌어주었다. 최근 몇 달간 아르헨티나의 채권과 주식은 밀레이의 지출 삭감 공약이 정치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여부에 따라 큰 변동성을 보였다. 이번 안정된 결과는 시장 심리를 진정시키고 IMF의 440억 달러 지원 프로그램 집행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 라틴아메리카 담당 알베르토 라모스는 "매우 강력하고 결정적인 결과"라며 "이번 선거로 정부는 새로운 정당성과 정치적 자본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자본을 바탕으로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을 구축하면 통치 안정성이 강화되고, 미국의 재정 지원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국내 경제는 여전히 고통... "정부는 국민의 고통을 외면"
그러나 글로벌 시장의 호평과 달리, 국내 경제의 현실은 여전히 가혹하다. 2023년 이후 실질임금은 20% 이상 하락했고, 소비지출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재정 긴축과 함께 성장·고용 회복 정책을 병행하지 않으면 민심이 돌아설 수 있다고 경고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의 좌파 성향 주지사 악셀 키실로프는"정부가 이번 결과를 축하하는 건 착각입니다. 수많은 아르헨티나 국민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문을 닫고, 가장 취약한 이들이 하루하루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