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해외에서 조직 운영... 스페인 공항에서 덜미
자신의 사망을 위장한 뒤 해외로 도피해 호화롭게 생활해온 에콰도르 출신 마약왕 윌머 차바리아가 결국 운이 다했다. 스페인 국가경찰은 일요일, 모로코에서 이동하던 그를 지중해 연안 도시 말라가 공항에서 체포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 보도했다.
에콰도르 정부에 따르면 차바리아는 지난 4년간 멕시코 할리스코 카르텔과 연계해 두바이·모로코·스페인 등을 오가며 마약 제국과 고향의 청부살인 작전을 지휘했다. 그는 검거를 피하기 위해 얼굴과 신체를 바꾸는 7차례의 성형수술을 받고 이름도 '다닐로 페르난데스'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WSJ에 따르면, 에콰도르 정부 고위 안보 당국자는 차바리아를 "국가 역사상 가장 위험한 범죄자"라고 규정하며, 그가 약 400건의 살인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크리스토퍼 랜도 국무부 부장관도 그를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악명 높은 범죄조직 핵심 인물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에콰도르 다니엘 노보아 대통령은 "일부는 그가 죽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지옥 속까지 찾아 들어갔다"고 말했다.
에콰도르 최강 폭력조직 '울브즈'의 수장... 폭력 급증의 핵심
'피포(Pipo)'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차바리아는 최근 몇 년 사이 에콰도르에 폭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조직 보스들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2021년 수감시설에서 대규모 학살이 벌어진 이후 폭력은 거리로 확산되며 국가 전체를 휩쓸었다.
에콰도르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살인이 많은 국가 중 하나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살인율은 약 800% 증가했으며, 올해는 인구 10만 명당 약 50명 사망이라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브라질 씽크탱크 이가라페 연구소에 따르면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도시 10곳 중 4곳이 에콰도르에 있다.
차바리아는 한때 멕시코 시날로아 카르텔과 협력해 콜롬비아산 코카인을 북미로 운반하던 교도소 폭력조직의 하부조직에서 활동했다. 그가 이끈 갱단 '울브즈(Wolves)'는 처음엔 청부살인을 주로 했지만 세력이 급속히 확장됐다.
2020년 경쟁 조직 두목이 사망하자 폭력이 걷잡을 수 없이 증가했으며, 여러 갱단 간 마약 루트와 패권을 두고 전쟁이 벌어졌다.
울브즈는 이후 멕시코의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의 지원을 받으며 에콰도르 최대 범죄조직으로 성장했다. 마약 밀매뿐 아니라 불법 금광 개발, 갈취, 정치 암살 등 범행 규모도 확대됐다.
사망 위장 → 위조 여권 → 사치 호텔 생활... 끝내 추적에 덜미
2021년 폭력 사태가 절정에 달하자 차바리아는 가짜 사망진단서를 이용해 사망을 위장했다고 에콰도르 내무장관 존 레임베르그가 밝혔다. 가족은 그가 코로나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경찰은 생존 가능성을 의심했다.
2022년 그는 위조한 콜롬비아 여권과 가짜 베네수엘라 신분증을 이용해 에콰도르를 탈출했다. 이후 유럽 주요 도시를 오가며 마약 운송망을 직접 관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임베르그 장관은 "그는 유럽에서 가장 비싼 호텔에 머물렀고, 그 비용은 마약 밀매·불법 채굴·살인으로 얻은 돈이었다"며 "어떤 면죄부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차바리아는 울브즈 조직을 지휘하며, 2023년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대선 후보 암살 사건에도 관여한 것으로 지목된다. 미국과 에콰도르 정부는 울브즈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으며, 수천 명의 조직원이 폭탄 테러·교도소 학살·정치 암살에 연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강경 대응에도 폭력은 지속
노보아 대통령은 '강경 진압'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재선에 성공했지만, 폭력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군 병력을 거리와 교도소에 투입해 통제력을 회복하려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새 초고보안 교도소도 개소했다.
하지만 일요일 국민투표에서 외국군 기지 유치를 위한 헌법 개정안이 부결, 치안 전략에 타격을 입었다. 통과 시 미국의 대마약작전 기지 재설치가 가능해질 예정이었다.
이번 부결은 한 달 전 과야킬 셰라톤 호텔 앞에서 차량폭탄이 폭발해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 이후 나온 것이다. 국민투표 며칠 전에는 마찰라 교도소에서 경쟁 조직의 공격으로 30명 이상이 목을 매달려 숨진 채 발견됐다.
지도자 체포가 또 다른 유혈 충돌 부를 가능성
에콰도르 육군 정보기관 전 수장 마리오 파스미뇨는 울브즈 조직의 차기 후계자가 불분명하다며, 내부 권력 다툼이 새로운 폭력을 촉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각 파벌이 조직 장악을 시도할 것이고, 조직은 앞으로도 범죄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틴아메리카 마약전쟁의 역사에서 이러한 권력 공백은 수십 년간 반복되어 온 문제다. 마약 조직 수장 체포가 오히려 폭력 확산과 갈등 격화를 야기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국제위기그룹 라틴아메리카 담당 디렉터 레나타 세구라는 "마약 밀매 문제 해결이 어려운 근본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막대한 이익 때문이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조직을 차지하려는 사람은 끝없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멕시코·콜롬비아의 사례로 본 구조적 악순환
멕시코에서는 2024년 시날로아 카르텔의 '엘 마요' 이스마엘 삼바다 체포 이후, 그의 가문과 '엘 차포' 구스만 가문 간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14개월간 2,000명 이상 사망, 3,000명 이상 실종된 것으로 추산된다.
콜롬비아 역시 마찬가지다. 2016년 FARC와의 평화협정으로 무장세력이 무기를 내려놓자, 코카인 생산지에서 권력 공백이 생기며 여러 무장조직이 다시 충돌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