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컴·오라클 급락에 변동성 장세 마무리

인공지능(AI) 인프라에 대한 막대한 투자 계획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며, 최근 이어지던 미국 증시 랠리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이번 주 초만 해도 투자자들은 금리 인하가 둔화된 경기 회복을 자극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은행, 산업재, 원자재 관련 주식으로 자금을 이동시키며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와 S&P500 지수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주 후반 들어 분위기는 급변했다.

브로드컴 급락, AI 기대에 균열

브로드컴 주가는 금요일 하루에만 11% 급락하며 1월 '딥시크(DeepSeek) 충격' 이후 최악의 하루를 기록했다. 이 여파로 S&P500과 나스닥 종합지수도 각각 1% 이상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AI 투자가 단기간 내 '블록버스터급'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다시 불거졌다.

브로드컴
(브로드컴. 자료화면)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급반전이 AI 테마가 여전히 시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올해 초 소수의 초대형 기술주가 주도했던 상승세에서 벗어나 투자 대상을 넓히려는 시도 속에서도, AI 관련 종목의 흔들림은 지수 전반을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BOK파이낸셜의 수석 투자전략가 스티브 와이엇은 "시장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라며 "AI 구축에 대한 열기를 지나 실제 수익을 기대하는 시점까지, 투자자들이 얼마나 인내할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실적은 호조, 그러나 의문은 남았다

브로드컴은 목요일 장 마감 후 사상 최대인 180억 달러의 매출과 견조한 이익 성장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맞춤형 AI 칩의 수익성, 오픈AI로부터의 대규모 계약 이행 시점, 그리고 2027년 이후까지의 가시성에 주목하며 우려를 키웠다. 결과적으로 브로드컴은 S&P500 내 최악의 성적 종목 중 하나로 밀려났고, 이 여파는 다른 AI 관련 기업들로 빠르게 확산됐다.

데이터센터 병목, 투자 지연 현실화

칩 제조사와 클라우드 기업들은 AI 수요가 사실상 '무한대'에 가깝다고 강조해왔다. AI 모델 기업 경영진들 역시 칩 공급 부족을 호소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주 동안 전력 공급, 지역 정치 문제 등 데이터센터 구축 과정의 병목 현상이 부각되며, 수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뒤로 밀릴 수 있다는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 같은 인식이 확산되면서, AI 인프라 프로젝트 지연 조짐에 투자자들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엔비디아 칩을 활용해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코어위브(CoreWeave)는 지난달 지연 사실을 공개한 이후 주가가 26% 하락했다.

오라클을 둘러싼 '바로미터' 시선

금요일에는 오라클이 오픈AI를 위해 건설 중인 데이터센터 개장이 늦어질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며 코어위브 주가가 추가로 10% 하락했다. 이에 대해 오라클 측은 "계약상 의무를 충족하기 위한 어떤 사이트에서도 지연은 없으며, 모든 마일스톤은 계획대로 진행 중"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오라클은 실적 발표에서 매출이 시장 예상치를 소폭 하회한 반면, 자본지출이 예상보다 크게 늘어났다고 밝혔다. 한때 'AI 대표 수혜주'로 꼽히던 오라클은 하루 4.5% 하락하며 주간 기준으로는 13% 떨어졌다. 이 여파로 엔비디아는 주간 4% 이상, AMD는 3% 이상 하락했다.

RBC캐피털마켓의 애널리스트 리시 잘루리아는 "모든 것이 서로를 증폭시키고 있다"며 "시장은 지금 오라클을 바로미터로 보고 있으며, 이것이 칩이나 전력 수요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해석하려 한다"고 말했다.

채권시장까지 번진 불안

불안은 주식시장에만 그치지 않았다.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이른바 'AI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발행한 회사채 거래량이 이례적으로 증가하며, 투자자들이 익스포저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오라클의 2055년 만기 5.95% 채권 스프레드는 미 국채 대비 2.07%포인트로 약 0.2%포인트 급등했다. 이는 실적 발표 직후였던 전날보다도 큰 폭이다. 코어위브의 2030년 만기 9.25% 채권 스프레드 역시 약 0.3%포인트 상승해 7.6%포인트에 달했다.

'걱정의 벽', 오히려 긍정 신호?

일부 투자자들은 높은 밸류에이션과 막대한 AI 인프라 투자로 인한 현재의 불안이 오히려 건전한 경계심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해석한다. 이는 시장이 아직 더 상승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에드워즈자산운용의 최고투자책임자(CIO) 로버트 에드워즈는 고객들이 AI가 고용과 물가에 미칠 영향, 노동시장 둔화 등 다양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광범위한 걱정이 역설적으로 긍정적 신호일 수 있다고 본다. 머니마켓펀드에 쌓인 7조7천억 달러의 자금과 지속되는 자사주 매입이 시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에드워즈는 "고객들은 분명 '걱정의 벽'을 쌓고 있다"며 "실제 상황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다. 걱정이 계속되고 대기 자금이 남아 있으며, 주식 공급이 줄어드는 한 시장은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