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는 여전히 강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달러 가치 하락과 외국인의 미 국채 매입 둔화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미묘한 경계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시장에서는 '셀 아메리카(Sell America)'가 아닌 '헤지 아메리카(Hedge America)' 흐름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 보도했다.
달러 1년 새 8% 하락...이례적 조합
지난 1년간 달러 가치는 약 8% 하락했다. 이는 미국 증시 강세, 견조한 경제 성장, 주요 선진국 대비 높은 금리 등 통상 달러 강세를 지지하는 요인들과 상반되는 흐름이다.
미국 자산에 약 36조 달러를 투자한 해외 투자자들은 자산을 대거 매도하기보다는 통화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페더레이티드 허미스(Federated Hermes)의 존 시다위(John Sidawi)는 "미국을 파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헤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화 헤지는 파생상품을 통해 달러를 매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는 주식이나 채권을 직접 매각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 수 있지만, 동시에 달러 약세를 가속하는 자기강화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유럽 연기금, 달러 헤지 비율 확대
덴마크 중앙은행 자료에 따르면, 덴마크 연기금과 보험사의 달러 헤지 비율은 지난해 초 61%에서 연말 71%로 상승했다. 유럽 최대 자산운용사 아문디(Amundi)의 안드레아스 코에닉(Andreas Koenig)은 "과거에는 달러를 보유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달러는 글로벌 불확실성 시기에 안전자산으로 기능해왔지만, 지난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투자자들의 판단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미 국채 매입 둔화...'무기화' 우려
외국인의 미 국채 보유액은 지난해 11월 9조4천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연간 순매입 규모는 전년 6,410억 달러에서 4,220억 달러로 감소했다. 일부 북유럽 중앙은행과 투자기관은 순매도자로 전환했다.
덴마크 연기금 아카데미커펜션(AkademikerPension)은 1억 달러 규모의 미 국채를 매도하겠다고 발표해 '셀 아메리카' 우려의 상징이 됐다. 최고투자책임자(CIO) 안데르스 셸데(Anders Schelde)는 "이는 일상적 포트폴리오 조정일 뿐"이라며 과도한 해석을 경계했다.
덴마크 최대 상업 연기금 PFA 역시 미 국채 비중을 줄이고 자국 통화 채권으로 이동했다. 다만 여전히 미국 주식에는 상당한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중국 변수
워싱턴의 최대 채권국인 일본과 중국의 움직임도 관건이다. 일본 내 금리 상승은 해외 투자 자금의 본국 회귀를 자극할 수 있다.
중국의 공식 미 국채 보유액은 2008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줄었지만, 외교관계위원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브래드 세처(Brad Setser)는 실제 보유 규모가 1조 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은 벨기에 등 해외 중개기관을 활용해 보유 규모를 분산해온 것으로 보인다.
미국 주식은 여전히 매력
그럼에도 외국인의 미국 주식 매수세는 견조하다. 미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외국인은 6,890억 달러어치의 미국 주식을 순매수했다. 이는 전년의 1,970억 달러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를 이끄는 니콜라이 탕엔(Nicolai Tangen)은 "인공지능(AI) 기업을 그냥 매도할 수는 없다"며 미국 기술주 비중 축소의 어려움을 언급했다.
다만 글로벌 증시가 미국을 앞지르기 시작하면서, 일부 투자자들은 미국 비중 축소를 점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많은 글로벌 펀드가 미국 비중이 높은 지수를 벤치마크로 사용하고 있어 구조적 조정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미국은 여전히 핵심"
셸데는 "향후 10년간 유럽 투자 비중을 늘리면 미국 비중은 자연히 줄어들 것"이라면서도 "양질의 연금을 제공하려면 미국 투자를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자산에 대한 전면적 이탈보다는, 달러 노출을 관리하는 전략적 재조정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셀 아메리카'가 아닌 '헤지 아메리카'가 당분간 글로벌 자금 흐름의 핵심 키워드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