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운송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이 심각한 충격에 빠졌다. 국제 유가는 급등했고 중동 산유국들은 생산을 줄이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가장 큰 에너지 위기로 평가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 보도했다. 

업계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된 직후 유조선 선장들에게 호르무즈 해협 진입을 경고하는 이란 해군 음성 메시지가 업계 메신저를 통해 확산됐다. 이후 유조선 운항은 급격히 줄었고, 현재 1,000척 이상의 선박이 해협 인근에서 통과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호르무즈 해협
(호르무즈 해협에 막혀 많은 배들이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대기하고 있다. 블룸버그)

호르무즈 해협은 오만과 이란 사이에 위치한 좁은 해상 통로로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에너지 수송로다. 이 해협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완전히 폐쇄된 적이 없다.

JP모건 분석에 따르면 해협 봉쇄 상태가 지속될 경우 중동 지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단기간에 400만 배럴 이상 감소할 수 있으며, 3월 말에는 감소 규모가 약 900만 배럴에 이를 수 있다. 이는 세계 원유 수요의 약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에너지 역사학자인 다니엘 예르긴 (Daniel Yergin)은 "현재 상황은 하루 기준 생산 감소 규모로 보면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공급 충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국제 원유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미국 원유 선물 가격은 지난주 36% 급등해 1983년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고 일부 거래에서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해협이 막히면서 중동 산유국들도 생산을 줄이고 있다. 이라크는 원유 저장 공간 부족으로 생산량을 3분의 2 이상 줄였고,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 역시 저장 시설이 넘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생산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쿠웨이트도 저장 공간 부족으로 일부 유정 가동 중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유 생산은 단순히 수도꼭지를 잠그듯 중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정을 멈추는 과정에서 장기적인 생산 능력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오래된 유전의 경우 유정을 다시 가동해도 이전 생산량을 회복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이번 위기는 원유 시장뿐 아니라 천연가스 시장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세계 최대 LNG 수출국 중 하나인 카타르는 이란 드론 공격 이후 라스 라판 가스 시설 생산을 중단했다. 이로 인해 세계 LNG 공급의 약 20%가 시장에서 사라졌고 유럽과 아시아 가스 가격은 급등했다.

LNG 시장에서는 더 높은 가격을 찾아 항로를 변경하는 선박도 나타났다. 미국에서 스페인으로 향하던 LNG 운반선이 항로를 바꿔 아시아로 향하는 등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서 가스 화물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긴급 대응에 나섰다. 미얀마는 차량 연료 배급제를 도입했고 태국은 일부 연료 수출을 중단했다. 필리핀은 공공기관에 전력 절약 지침을 내렸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비료 생산 감소가 농업 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셰일 오일 생산 증가로 과거보다 에너지 충격에 대한 방어력이 높아졌지만 완전히 자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휘발유와 디젤 가격 상승이 소비자 부담을 높이고 있으며 항공 연료 가격 급등으로 항공사들이 운임 인상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에너지 공급망을 공격해 서방 경제에 압박을 가하려는 전략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유럽 가스 공급을 줄여 서방의 지원을 약화시키려 했던 전략과 유사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물리적으로 봉쇄된 상태는 아니며 일부 선박은 제한적으로 통과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미국 해군의 호위 작전이나 긴장 완화로 운송이 재개될 경우 가격 상승세가 일부 완화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