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플레이션 흐름을 두고 상반된 신호가 나타나면서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반면, 연방준비제도(Fed)가 선호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동 지역 긴장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향후 물가 흐름에 대한 논쟁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CPI는 목표치 근접...PCE는 여전히 3%대 압력

미 노동부에 따르면 1월 CPI 상승률은 전년 대비 2.4%로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을 나타냈다. 시장에서는 2월 CPI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해당 지표는 이번 주 중 발표될 예정이다.

반면 연준이 통화정책 판단의 핵심 지표로 활용하는 PCE 물가지수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PCE 상승률은 2.9%로 집계됐으며, 1월 수치 역시 비슷한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연준의 물가 목표인 2%를 상당 폭 웃도는 수준이다.

소비자물가지수
(소비자 물가. 자료화면)

두 지표가 이렇게 상반된 흐름을 보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일반적으로 PCE 상승률은 CPI보다 0.2~0.3%포인트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PCE가 CPI보다 약 0.5%포인트 높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물가 지표 격차, 1980년대 이후 최대 가능성

이 같은 격차가 유지될 경우 두 지표 간 차이는 1980년대 중반 이후 가장 크게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시에는 1970년대 고물가 이후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하락하는 과정에서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 바 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현재 물가 상황을 더 정확히 반영하는 지표가 무엇인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평소에는 기술적인 논쟁에 불과했던 이 문제는 현재 연준의 금리 정책 방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금리 인하 여부, 물가 지표 방향에 달려

향후 몇 달간 인플레이션 흐름은 연준의 금리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만약 PCE 물가 상승률이 CPI 수준으로 하락한다면 연준은 금리 인하에 나설 명분을 확보하게 된다. 특히 최근 발표된 2월 고용보고서에서 미국 경제가 예상과 달리 9만2000개의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경기 둔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반대로 CPI 상승률이 PCE 수준으로 다시 상승할 경우 상황은 복잡해질 수 있다.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실업률까지 높아질 경우 연준은 정책 선택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 CPI를 끌어올릴 가능성

최근 중동 지역 긴장 고조로 국제 유가가 급등한 것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CPI는 에너지 가격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유가 상승은 CPI 상승률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시장 참가자들의 인플레이션 기대도 상승하는 모습이다. 향후 12개월 CPI 상승률을 반영하는 인플레이션 스왑은 최근 약 2.9% 수준까지 상승했으며, 이는 2월 말의 2.3% 수준에서 크게 오른 것이다.

주거비와 의료비 비중 차이가 격차 원인

두 지표 간 격차는 산출 방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CPI는 가계가 직접 지불하는 소비 항목을 중심으로 측정되는 반면, PCE는 가계 대신 기업이나 정부가 지불하는 비용까지 포함한다.

이 때문에 CPI에서는 주거비 비중이 매우 높다. 핵심 CPI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5%에 달한다. 반면 PCE는 의료비 비중이 더 높고 주거비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최근 들어 주거비 상승률이 빠르게 둔화되는 반면 의료 서비스 물가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CPI와 PCE 간 격차가 확대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지난해 정부 셧다운 이후 발생한 통계상의 요인이 주거비 상승률을 일시적으로 낮췄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3%대 고착 가능성도 제기

물가 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부 제조업체들은 여전히 원자재 가격 상승 압력을 받고 있으며, 이는 향후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주거비를 제외한 서비스 물가 상승률 역시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독립 경제학자 필 서틀은 미국 인플레이션이 결국 약 3% 수준에서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는 향후 감세 정책이 시행될 경우 소비가 확대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유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준 3월 회의가 향방 가를 전망

시장에서는 오는 3월 18일 예정된 연준 회의에서 발표될 경제 전망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연준 위원들은 지난해 12월 전망에서 올해 한 차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일부 위원들은 2026년까지 금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향후 발표될 CPI와 PCE 지표가 어느 방향으로 수렴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인플레이션 경로와 통화정책 방향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