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에 연동된 암호화폐인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핵심 축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지만, 동시에 과거 금융위기와 유사한 구조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 "스테이블코인은 사실상 새로운 형태의 민간 화폐(private money)"라며 "규제가 강화되더라도 본질적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현재 미국 정치권은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제정된 'GENIUS Act'와 현재 상원을 통과 중인 'Clarity Act'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대표적 법안들이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 역시 암호화폐 산업 육성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의 구조 자체가 금융 시스템 불안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Bitcoin)과 달리 미국 국채(Treasury bills)나 현금성 자산 등을 담보로 삼아 달러 가치와 1대1 연동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다.
현재 시장 규모는 약 3000억 달러 수준으로, 테더(Tether)의 USDT가 약 1900억 달러, 서클(Circle)의 USDC가 약 760억 달러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지지자들은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은행 시스템보다 더 빠르고 저렴한 국제 송금·결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블록체인 기반 구조 덕분에 국경 간 거래 효율성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국제결제은행(BIS)은 이러한 구조가 본질적 모순을 안고 있다고 경고한다.
BIS의 파블로 에르난데스 데 코스(Pablo Hernández de Cos) 사무총장은 "스테이블코인은 공공 화폐(public money)의 신뢰성을 차용하면서도, 기존 중앙은행 결제 시스템 밖에서 작동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단일성(singleness)' 부족이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달러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거래하든 항상 동일한 가치가 유지된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사마다 서로 다른 독자 인프라를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 시장에서는 미세한 가격 괴리가 발생한다.
실제로 USDT와 USDC는 모두 1달러 고정을 목표로 하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소폭의 가격 이탈이 반복적으로 발생해왔다.
또 다른 우려는 수익 추구 과정에서의 위험 확대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수익을 늘리기 위해 더 높은 수익률의 자산에 투자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하지만 담보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 대규모 환매(run)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금융시장 전체로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머니마켓펀드(MMF)의 '브레이킹 더 벅(Break the Buck)' 사태와 유사한 위험으로 지적된다. 당시 일부 MMF가 1달러 가치 유지를 실패하면서 시장 전체 공포가 확산된 바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이미 민간 화폐 시스템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다.
1837년부터 1863년까지 이어진 '자유은행 시대(Free Banking Era)'에는 민간 은행들이 자체 화폐를 발행했지만, 화폐 가치 변동과 광범위한 사기, 은행 파산 문제가 속출했다.
WSJ는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당시와 유사한 구조적 취약성을 일부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테더의 USDT처럼 미국 외부에서 운영되는 스테이블코인들은 미국 규제망 밖에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또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은 제재 회피와 자금세탁 등 불법 암호화폐 활동의 84%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실물경제 결제에서의 사용 비중은 아직 매우 낮다.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Kansas City Fed) 연구에 따르면 현재 스테이블코인 사용의 1% 미만만이 실제 상품·서비스 결제에 활용되고 있으며, 대부분은 암호화폐 거래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전통 은행권은 이에 대응해 '토큰화 예금(tokenized deposits)'이라는 대안을 추진 중이다.
은행들은 블록체인 기술의 장점은 활용하면서도 연준(Fed) 시스템 안에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WSJ는 "스테이블코인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면서도 "결국 은행 시스템처럼 강력한 규제와 중앙은행 체계 안으로 편입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