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내 헤즈볼라(Hezbollah) 공격을 이유로 미국과의 간접 대화를 중단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이란 휴전 협상이 다시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와 연계된 타스님(Tasnim) 통신은 1일 이란이 "레바논에서 계속되는 시온주의 정권의 범죄"에 항의해 미국 측과의 메시지 교환을 중단한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도 이란 외무부가 미국의 입장 변화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 외교적 진전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레바논도 휴전에 포함돼야"...아라그치, 미국·이스라엘 책임론 제기
압바스 아라그치(Abbas Araghchi) 이란 외무장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레바논이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이란 휴전 구도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휴전 위반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란이 단순히 자국 영토나 호르무즈 해협 문제만이 아니라, 레바논·가자지구 등 이른바 '저항축' 전선 전체를 휴전 협상의 일부로 묶으려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란 측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 계속되는 한 미국과의 협상도 정상적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란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세에 반발해 미국과의 평화 협상을 중단했으며, 이 조치가 지난 4월 이후 유지돼온 취약한 휴전 구도에 추가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헤즈볼라 충돌 격화...베이루트 남부 교외도 표적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충돌도 다시 격화되고 있다. AP통신은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지지 기반이 강한 베이루트 남부 교외 지역에 대한 공습을 명령했으며, 헤즈볼라도 이스라엘 북부를 겨냥한 로켓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양측은 지난 4월 휴전 이후에도 서로가 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에서 26년 만에 가장 깊숙한 지상 진입을 감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충돌은 미국과 이란 사이의 핵·휴전 협상에도 직접적인 변수가 되고 있다. 이란은 헤즈볼라를 포함한 역내 동맹 세력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는 한 협상에 의미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군사 활동을 휴전 위반으로 보고 있다.
이란의 핵심 요구는 제재 완화·핵 권리·호르무즈 주권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이란의 핵심 요구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미국의 제재 완화와 동결 자산 해제다. 둘째는 자국 내 핵 개발 권리, 특히 민간 핵 프로그램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다. 셋째는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과 주권을 인정받는 문제다.
로이터통신은 이란 외무부가 아직 세부 핵 협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도, 이란의 동결 자산 해제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뉴욕포스트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수정된 평화안을 되돌려보내면서 핵무기 포기, 농축 우라늄 처리, 호르무즈 해협 개방 문제를 더 강하게 반영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핵무기 포기와 호르무즈 개방 압박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구매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협정에 명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최근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히면서도, 외부에서 핵무기를 구매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확보하는 가능성까지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호르무즈 해협을 국제 수로로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만큼, 이란이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할 경우 국제 유가와 해상 물류에 즉각적인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이란의 협상 중단 보도 이후 국제유가가 급등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모즈타바 하메네이, '새 이슬람 문명' 내세워 반미 연대 촉구
이란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Mojtaba Khamenei)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 확대를 추진한 직후, 중동 이슬람권 국가들을 향해 '새 이슬람 문명(New Islamic Civilization)' 구상을 제시하며 반미 연대를 촉구했다.
그는 소셜미디어 X에 "모든 이슬람 국가와 정부를 선의의 우정과 협력으로 초대한다"며 이슬람 공동체의 문제 해결과 지역 질서 재편을 강조했다.
그는 또 "미국은 더 이상 서아시아에서 장난질을 하거나 군사기지를 세울 안전한 피난처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폭스뉴스가 인용한 분석가 오마르 모하메드(Omar Mohammed)는 하메네이의 메시지를 두고 "이슬람 세계가 이란의 지도 아래 미국 주도의 질서에 맞서 결집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의 아브라함 협정 확대 구상에 맞불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튀르키예, 파키스탄, 이집트, 요르단, 바레인 등 중동·이슬람권 국가 정상들과 통화하며 2020년 체결된 아브라함 협정 확대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이란을 압박하고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들의 안보·경제 협력을 넓히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에 맞서 하메네이는 같은 지역 국가들을 향해 미국 주도의 질서가 아니라 이란 중심의 이슬람권 연대를 선택하라고 촉구한 셈이다. 이란은 걸프 국가들이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미국과 거리를 두고 새로운 지역 질서에 참여할 것인지를 압박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협상 중단은 압박 카드...전면 결렬 여부는 아직 불확실
이란의 간접 대화 중단 선언은 협상 결렬이라기보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동시에 압박하기 위한 전술적 조치일 가능성이 크다. 이란은 레바논과 가자지구, 호르무즈 해협, 핵 협상, 제재 완화 문제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협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포기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우선 조건으로 내세우며, 필요할 경우 군사 압박을 재개할 수 있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겨냥한 군사 작전을 멈추지 않고 있어, 이란이 요구하는 '전선 전체의 휴전'과는 거리가 있다.
중동 질서 재편 둘러싼 미·이란 충돌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미국·이란 핵 협상을 넘어 중동 지역 질서를 둘러싼 충돌로 확대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브라함 협정 확대를 통해 이스라엘과 수니파·걸프 국가들을 묶는 친미 안보 질서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새 이슬람 문명'과 '이슬람 공동체'를 앞세워 미국 주도의 지역 질서에 맞서는 반미·반이스라엘 연대를 구축하려 한다.
레바논 전선이 격화되고, 호르무즈 해협과 핵 협상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중동 정세는 다시 불안정한 국면에 들어섰다. 이란의 대화 중단이 일시적 압박 카드에 그칠지, 아니면 미국·이란 휴전 협상의 실질적 붕괴로 이어질지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작전 수위와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