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의 가계 재정에 대한 비관론이 다시 커지고 있다. 수년간 이어진 높은 인플레이션 이후 경기 연착륙 기대가 있었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생활비 부담과 고용 불안, 부채 상환 압박을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9일 발표한 월간 소비자기대조사에 따르면, 5월 미국 가계 가운데 1년 전보다 재정 상황이 "훨씬 나빠졌다"고 답한 비율은 13.3%로 집계됐다. 이는 4월보다 2%포인트 이상 오른 수치이며, 2022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앞으로의 재정 전망도 어두워졌다.

텅빈 지갑
(텅빈 소비자 지갑)

향후 1년 동안 자신의 재정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예상한 응답자는 36%에 달했다. 반면 재정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본 응답자는 23% 미만이었다. 이에 따라 순낙관지수는 2022년 10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식료품 5.8%, 렌트비 7.4% 상승 예상

전체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생활과 직접 연결된 주요 비용에 대한 우려는 높았다. 응답자들은 향후 1년 동안 식료품 가격이 5.8%, 렌트비가 7.4%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미국 가계가 체감하는 물가 부담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과거 고점에서는 내려왔지만, 식료품과 주거비처럼 매달 반복적으로 지출되는 항목에서는 부담이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다.

연방준비제도(Fed)의 최근 베이지북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줬다. 베이지북은 연준 산하 12개 지역의 경제 상황을 종합한 보고서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가격은 전반적으로 "보통에서 강한 속도"로 상승했으며, 대부분 지역에서 이전 보고서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졌다고 평가됐다.

보고서는 특히 중동 분쟁과 관련된 에너지 비용 상승이 물가 압력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고, 이 영향이 운송, 포장, 식료품, 비료 가격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클리블랜드 연은 지역에서는 연료 할증료 증가도 언급됐다.

고용시장 불안도 커져

소비자들의 불안은 노동시장 전망에서도 나타났다. 현재 직장을 잃을 경우 새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보는 응답 비율은 43.7%에 그쳤다. 이는 2025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뉴욕 연은은 "해고 가능성에 대한 예상은 높아지고, 새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는 낮아지는 등 노동시장 기대가 다소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제 고용지표는 아직 견조한 편이다. 노동부가 지난 6일 발표한 5월 고용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5월에 17만2,000개의 일자리를 추가했다. 이는 경제학자들의 예상치를 웃도는 수치다. 실업률은 4.3%로 유지됐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의 린지 로스너(Lindsay Rosner) 멀티섹터 채권투자 책임자는 5월 고용보고서를 두고 "급여 고용 서프라이즈"라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고용지표를 보면 연준이 노동시장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줄었다며, 이제 초점은 인플레이션과 중동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에 맞춰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연준이 금리를 움직이지 않고 동결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부채 상환 부담도 확대

가계의 부채 부담도 커지고 있다. 뉴욕 연은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8명 중 1명 이상인 12.6%는 향후 90일 안에 최소 부채 상환액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이 비율의 증가는 주로 고졸 이상 학력의 응답자와 연소득 10만 달러 미만 가구에서 두드러졌다. 이는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계가 높은 생활비와 금리 부담 속에서 점점 더 압박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60세 이상 은퇴자와 연소득 5만 달러 미만 근로자들은 향후 지출 증가 기대치도 낮아졌다고 보고했다. 이는 이들이 앞으로 소비를 줄이거나 지출을 더 신중하게 관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물가는 둔화됐지만 체감 부담은 여전

이번 조사 결과는 거시경제 지표와 소비자 체감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고용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고 실업률도 급등하지 않았지만, 가계는 식료품, 주거비, 에너지, 부채 상환 부담을 통해 경제적 압박을 직접 느끼고 있다.

특히 렌트비와 식료품은 가계가 줄이기 어려운 필수 지출이다. 이 두 항목에 대한 가격 상승 기대가 높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앞으로도 생활비 부담이 쉽게 줄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연준 입장에서도 부담은 커졌다. 고용시장이 아직 견조하다면 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는 줄어든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재정 불안과 부채 상환 우려가 커지면, 높은 금리가 가계와 소비를 압박하는 문제도 외면하기 어렵다.

연준, 인플레이션과 소비 둔화 사이에서 고민

5월 고용지표만 보면 미국 경제는 아직 급격히 꺾이지 않았다. 하지만 뉴욕 연은의 소비자기대조사는 가계 심리가 빠르게 나빠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높은 수준에서 유지해왔지만, 식료품과 렌트비에 대한 불안이 계속되는 한 소비자들은 물가가 안정됐다고 느끼기 어렵다. 동시에 고금리 환경은 신용카드, 자동차 할부, 주택담보대출, 기타 소비자 부채 부담을 키우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핵심은 미국 가계가 여전히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신호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는 늘고 있지만 새 일자리를 찾을 자신감은 줄었고, 물가 상승률은 과거보다 낮아졌지만 식료품과 렌트비 부담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미국 경제의 향방은 고용시장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중동 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충격이 얼마나 이어질지, 그리고 연준이 인플레이션과 소비 둔화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선택할지에 달려 있다.

현재로서는 미국 가계의 재정 심리가 다시 악화되고 있으며, 생활비 부담이 소비자 불안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