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 보험사 스테이트팜(State Farm)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새로운 영업 체계를 도입하고, 전국 1만9,000명의 전속 에이전트 계약을 전면 개편하기로 하면서 내부 반발이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존 파니(Jon Farney) 스테이트팜 최고경영자는 지난달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에이전트 대회에서 2027년 이후에도 회사와 계속 일하려는 에이전트들은 새로운 보상 계약과 판매 목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스테이트팜은 행사에 참석한 수천 명의 에이전트를 위해 가수 핑크(Pink)의 공연과 지미 팰런(Jimmy Fallon)이 진행한 합창 행사, 광고 캐릭터 '제이크 프롬 스테이트팜' 배우와의 사진 촬영 등을 마련했다. 그러나 축제 분위기 속에서 발표된 계약 개편안은 에이전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스테이트팜
(스테이트팜)

파니 CEO는 행사 영상에서 "스테이트팜은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계약 폐기하고 2027년 이후 새 계약 적용

회사가 제시한 새 계약은 비용을 줄이고, 에이전트들이 더 큰 사무소로 통합하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회사 문서와 에이전트들에 따르면 새 계약은 가치가 큰 이연보상 제도를 종료하고, 건강보험 혜택을 없애며, 여러 보험상품의 수수료 체계를 변경한다.

새 판매 목표를 2년 연속 달성하지 못한 에이전트에게는 더 낮은 수수료가 적용될 수 있다.

스테이트팜 에이전트들은 독립계약자 신분이지만 스테이트팜 상품만 판매한다. 계약 변화가 미치는 영향은 영업 구성과 근속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일부 에이전트의 연간 총수입은 최대 40% 줄어들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주장했다.

일부는 직원 감축, 주택 재융자 또는 사무실 임대계약 해지를 검토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받아들이거나 떠나라... 뺨을 맞은 기분"

새 계약안이 공개된 뒤 페이스북과 레딧, 인스타그램 등에서는 에이전트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한 에이전트는 "많은 사람이 정말 화가 나 있다"고 썼다. 또 다른 반응에는 "받아들이거나 떠나라는 것"이라며 "정말 뺨을 맞은 기분"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라스베이거스 행사가 끝난 뒤 회사는 새 계약 내용과 퇴직 선택권을 설명하는 이메일을 에이전트들에게 보냈다. 에이전트들은 이를 계기로 내부에 충격이 확산됐으며, 영업조직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고 전했다.

스테이트팜은 성명을 통해 "더 많은 고객의 필요를 충족하고,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공하며, 미래를 위한 에이전트 모델을 강화하기 위해 독립계약자 에이전트를 지원하고 협력하는 방식을 개편하고 있다"고 밝혔다.

AI로 고객 분석·상품 추천 자동화

에이전트들은 새 계약과 함께 AI를 영업 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요구도 받고 있다.

스테이트팜은 지난달 '넥스트 젠 굿 네이버(Next Gen Good Neighbor)'라는 AI·디지털 전략을 발표했다. 회사는 기술과 사람의 상호작용을 결합하되, 개인적 관계는 계속 영업의 기반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도입 예정인 도구에는 디지털 비서와 AI 기반 고객 분석 기능이 포함된다. AI는 각 가구가 현재 어떤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를 즉시 요약하고, 고객에게 맞는 보험 및 금융상품을 추천하게 된다.

회사는 자동차 사고를 신고하는 고객에게 대응하는 AI 비서도 시험 운영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행사 내용을 정리한 내부 보고서에는 "스테이트팜은 무시할 수도, 무시해서도 안 되는 고객 요구에 대응해야 한다"며 "변화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돼 있다"고 적혀 있었다.

프로그레시브에 자동차보험 1위 자리 내줘

이번 개편은 보험업계 내 스테이트팜의 입지가 약화된 데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S&P 자료에 따르면 스테이트팜은 올해 미국 개인 자동차보험 시장 1위 자리를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에 내줬다. 스테이트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이 자리를 지켜왔다.

프로그레시브는 개인 자동차보험의 절반 이상을 에이전트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한다. 업계 분석가들은 프로그레시브가 AI와 기술을 이용해 판매 비용을 낮추고 빠르게 성장했다고 평가한다.

반면 스테이트팜은 에이전트를 통해 판매되는 자동차보험 시장의 대표 기업이다. 마이클 자렘스키(Michael Zaremski) BMO캐피털마켓 보험 애널리스트는 스테이트팜을 "에이전트 판매 자동차보험 시장의 골리앗"이라고 표현했다.

지역사회 기반 영업망이 성장 동력

스테이트팜은 104년 전 일리노이주의 농부 출신 보험 에이전트가 설립했다. 회사는 작은 마을까지 뻗은 대규모 영업망을 바탕으로 미국 최대 주택·자동차보험사로 성장했다.

에이전트들은 지역사회에 사무실을 열고 주민들과 오랜 관계를 맺으며 보험을 판매했다. 많은 사람에게 스테이트팜 에이전트는 비교적 높은 수입과 복지, 장기적인 직업 안정성을 제공하는 성공 경로로 여겨졌다.

이 영업망은 현재 미국 전역의 약 1만9,000명으로 커졌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앱과 챗봇을 통해 더 빠르고 저렴하게 보험에 가입하기를 원하면서, 오랜 에이전트 중심 영업모델이 비용 부담으로 지목되고 있다.

보험료 오르면서 에이전트 수수료도 증가

파니 CEO는 전통적인 보험 영업 방식이 느릴 뿐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든다고 지적했다.

팬데믹 이후 주택보험과 자동차보험료가 크게 오르면서 보험료에 연동된 에이전트 수수료도 함께 늘었다. 그는 내부 영상에서 이 비용 증가가 고객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파니 CEO는 "지금까지와 같은 속도로 비용 증가분을 고객에게 계속 넘길 수 없다"며 "여기에는 에이전트 유통 모델 비용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자동차보험료는 최근 보험료 인상으로 보험사의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상승세가 둔화하고 있다. 그러나 주택보험은 자연재해와 건축비, 재보험료 등의 영향으로 비용 압력이 계속되고 있다.

파니 CEO는 "인플레이션과 기상재해 손실, 위험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1년 이후 주택보험료 37%·자동차보험료 38% 인상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스테이트팜이 주 정부 승인을 받아 인상한 보험료는 2021년 이후 전국 평균으로 주택보험 37%, 자동차보험 38%에 달했다.

같은 기간 보험업계 평균 인상률은 주택보험 51%, 자동차보험 41%였다. 스테이트팜의 인상률은 업계 평균보다는 낮았지만, 회사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보험료를 더 낮춰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

회사는 이를 위해 운영비와 영업비용을 줄여야 하며, 에이전트 계약 개편과 AI 도입을 핵심 수단으로 보고 있다.

투자상품 판매·사업 확대 에이전트에 더 많은 보상

새 보상체계는 투자상품을 많이 판매하고 사업 규모를 키우는 에이전트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상품은 주택보험보다 스테이트팜에 더 높은 수익을 안겨준다. 회사는 기존 보험 갱신에 의존하기보다 새로운 고객과 상품 판매를 늘리는 에이전트에게 더 많은 보상을 제공하려 한다.

반대로 기존 주택·자동차보험 고객의 갱신 수입을 중심으로 영업해온 고령 에이전트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일부 에이전트들은 고객들이 더 빠르고 효율적인 서비스를 원한다는 점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다만 개편 속도와 보상 축소 수준을 두고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퇴직 선택하면 최대 30만 달러 지급

새 계약을 받아들이지 않는 에이전트는 퇴직을 선택할 수 있다.

파니 CEO는 행사에서 "지금도 스테이트팜 에이전트가 되기에 좋은 시기인가"라고 물은 뒤 "그렇다. 대부분의 에이전트도 같은 답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회사를 떠나려는 에이전트는 9월 말까지 '단기 퇴직 지급금'을 신청할 수 있다. 지급액은 5만 달러에서 30만 달러 사이이며, 지급 여부와 액수는 회사 재량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일부 에이전트들은 이 금액이 자신들이 수십 년간 키워온 영업조직 가치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50년 근무한 전직 에이전트도 혜택 잃어

앨라배마주 플로렌스에서 거의 50년 동안 스테이트팜 에이전트로 일한 스티브 피어스(Steve Pierce)는 6개월 전 은퇴했다.

그는 은퇴를 결정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회사가 평생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월 400달러 규모의 메디케어 보충보험 혜택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혜택은 올해 말 종료될 예정이다.

피어스는 "스테이트팜은 나에게 매우 잘해줬다"면서도 "회사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보니 충격이다. 조금 배신당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스테이트팜은 건강보험 시장이 복잡하고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에 독립계약자들에게 현대적인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전통적 에이전트 모델의 전환점

스테이트팜의 개편은 AI가 보험 판매 방식과 에이전트의 역할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AI와 디지털 도구는 고객 정보를 빠르게 분석하고 상품을 추천하며 사고 신고를 처리할 수 있다. 보험사는 이를 통해 비용을 낮추고 소비자에게 더 빠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회사의 비용 절감이 에이전트의 수입과 복지 축소로 이어질 경우, 오랫동안 스테이트팜의 성장을 이끌어온 영업망이 약화될 위험도 있다.

스테이트팜은 개인적 관계를 영업의 기반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새 계약과 AI 도입 계획을 보면, 앞으로 에이전트는 고객과 관계를 유지하는 전통적 영업사원에서 AI가 제안한 상품을 판매하고 높은 성장 목표를 달성하는 대형 사무소 운영자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회사가 프로그레시브와 같은 디지털 중심 경쟁사를 따라잡으면서도 1만9,000명의 에이전트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이번 개편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