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초대형 트레이딩 회사 제인스트리트(Jane Street)가 인공지능(AI) 투자와 인재 확보를 확대하면서 오랜 비밀주의에서 벗어나 점차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제인스트리트는 26년 전 소수 인원으로 출발한 뒤 현재 직원 3,500명 규모로 성장했으며, 올해 500명 이상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다.
회사는 AI 기술을 트레이딩에 적극 활용하고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기술 인재와 창업자들에게 회사의 존재를 더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제인스트리트는 비상장 회사로 외부 자금을 운용하지 않고 자체 자금만으로 거래한다. 독자적인 알고리즘을 이용해 수익을 내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회사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조직 구조도 독특하다. 회사를 대표해 방송에 출연하거나 공식 얼굴 역할을 하는 최고경영자 한 명이 없으며, 의사결정이 비교적 수평적으로 이뤄진다.
"문화적으로 폐쇄적이지만 외부 사업 확대"
AI 투자 업무를 맡고 있는 제인스트리트 트레이더 존 대니얼 케이스(John Daniel Case)는 회사가 의도적으로 비밀스러운 조직을 만들려 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문화적으로 내부 지향적"이라면서도 "이제는 외부와 더 많이 접촉해야 하는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인스트리트 경영진 상당수는 엔지니어와 수학자 출신으로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맞은편 브룩필드플레이스의 평범한 사무용 건물에 자리하고 있다. 회사 이름도 실제 거리와 관계없이 임의로 정한 것이다.
직원 3,500명... 올해 500명 이상 채용
제인스트리트는 올해만 500명 이상의 신규 직원을 뽑을 계획이다.
회사는 스스로를 전통적인 헤지펀드보다 대학의 수학과나 연구소에 가까운 조직으로 소개하며 인재를 끌어들이고 있다.
최근 기술업계에서 영향력이 큰 '드워케시 팟캐스트(Dwarkesh Podcast)' 광고를 통해 직원들에게 강의와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도제식 훈련으로 연구자와 엔지니어를 육성한다고 홍보했다.
제인스트리트는 채용 과정에서 복잡한 수학 문제와 논리 퍼즐을 출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뉴욕 본사의 약 4만 제곱피트 규모 트레이딩룸에서는 대부분 젊은 직원들이 티셔츠와 반바지, 슬리퍼 차림으로 근무한다.
조명도 직원들의 생체리듬에 맞춰 아침에는 호박색, 낮에는 청백색, 저녁에는 다시 따뜻한 색으로 바뀐다.
직원들은 휴식시간에 비디오게임이나 포커를 즐기며, 이는 수학과 확률 중심의 회사 문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됐다.
코어위브에 10억 달러 투자·클라우드 사용 60억 달러 계약
제인스트리트는 AI 기업들과의 거래도 공개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회사는 지난 4월 AI 컴퓨팅 기업 코어위브(CoreWeave)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고, 앞으로 코어위브의 AI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60억 달러를 지출하기로 했다.
제인스트리트는 거래가 끝난 뒤 코어위브 측에 이를 보도자료로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비밀주의로 유명한 제인스트리트가 거래 공개를 요구하자 코어위브 공동창업자 브래닌 맥비(Brannin McBee)는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제인스트리트가 대규모 컴퓨팅 자원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알려 AI 인재와 스타트업에 신호를 보내려는 전략이었다고 평가했다.
챗GPT 등장 이후 AI 투자 가속
제인스트리트는 오래전부터 머신러닝을 이용해 거래모델을 개발해왔다.
그러나 2022년 말 챗GPT가 공개된 이후 AI에 대한 투자를 크게 확대했다.
회사는 현재 약 200억 달러 규모의 비상장기업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AI 기업 앤스로픽(Anthropic) 지분도 포함돼 있다. 제인스트리트는 2024년 파산한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자산에서 해당 지분을 매입했다.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Sam Bankman-Fried)는 제인스트리트 출신으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이 회사에서 근무했다.
그는 당시 후드티를 입고 신발을 신지 않은 채 사무실을 돌아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성으로 세계 금융시장 장악
제인스트리트는 2000년 서스퀘하나인터내셔널그룹(Susquehanna International Group) 출신 임원 3명과 IBM 개발자 1명이 설립했다.
회사의 주요 수익원은 시장조성이다. 투자자가 주식이나 채권,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사고팔 때 거래 상대방이 돼 유동성을 제공하고, 매수·매도 가격 차이에서 수익을 얻는다.
회사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주요 시장에서 거래하며, 자체자금 500억 달러 이상을 활용해 투자자산 가격의 움직임에도 베팅한다.
제인스트리트는 ETF 시장에 일찍 진출해 최대 사업자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이후 개별 주식과 채권, 옵션, 상품, 암호화폐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했으며, 주식과 채권 시장조성 거래량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속도보다 가격 차이 분석이 경쟁력
제인스트리트는 초단타매매 회사처럼 거래 속도만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회사의 핵심 능력은 ETF와 구성 종목, 관련 파생상품 사이의 가격 차이를 빠르게 계산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튀르키예 관련 ETF 가격이 실제 구성 종목 가치보다 비싸다고 판단되면, 알고리즘은 구성 종목을 사고 ETF를 매도하는 방식으로 가격 차이를 이용한다.
투자자의 주문이 들어오면 시스템은 즉시 거래를 체결하면서 반대 포지션을 찾아 위험을 줄이고 수익을 확보한다.
회사는 개인별 손익 실적을 공개적으로 순위화하지 않으며, 개인 트레이더 한 명이 대규모 베팅을 하는 구조도 피하고 있다.
이 같은 운영방식은 내부 경쟁보다 협업을 장려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1분기 순이익 103억 달러
제인스트리트는 올해 1분기 거래수익 161억 달러에서 사상 최대인 103억 달러의 순이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기간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와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의 순이익은 각각 약 56억 달러였다.
두 투자은행의 전체 직원 수는 합쳐서 약 12만8,000명으로, 제인스트리트 직원 수보다 훨씬 많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의 금융산업 리서치 책임자 래리 탭(Larry Tabb)은 제인스트리트가 사실상 거의 모든 다른 증권사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평가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다른 금융회사들이 위험을 줄일 때도 제인스트리트는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고 거래 규모를 키웠다.
개인투자자 거래가 급증하자 개인투자자 주문의 상대방이 되는 사업도 빠르게 확대했다.
성장하면서 규제·법적 논란도 증가
제인스트리트가 성장하면서 회사에 대한 감시와 논란도 커지고 있다.
2024년 회사는 전직 트레이더 2명이 헤지펀드 밀레니엄매니지먼트(Millennium Management)로 이직하자 영업기밀 침해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양측은 이후 합의로 소송을 마무리했다.
파산한 블록체인 기업의 자산관리인은 제인스트리트가 암호화폐시장에서 내부자거래를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도에서는 사기성 거래 의혹으로 금융시장 참여가 일시적으로 금지되기도 했다.
제인스트리트는 두 사건의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공동창업자 롭 그래니어리(Rob Granieri)가 남수단 군사쿠데타 음모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속았다고 주장한 사건도 언론에 보도됐다.
여전히 언론 노출 자제
제인스트리트는 신규 직원들에게 언론과 접촉하거나 개인적으로 주목받는 행동을 피하도록 권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기관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행위도 하지 말라는 문화가 강하다.
전직 직원은 창업자들이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을 회사의 핵심 가치로 강조했다고 전했다.
회사는 2023년 수학 전문 유튜브 채널 넘버파일(Numberphile)을 후원하고, 2024년부터 드워케시 팟캐스트에 광고를 내면서 제한적으로 대외 홍보를 시작했다.
AI로 거래모델 더 고도화
제인스트리트는 앞으로 AI를 이용해 거래모델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 계획이다.
머신러닝 엔지니어 애덤 캐너디(Adam Canady)는 "매일 더 많은 데이터가 생기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더 빠르게 소화하고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의 핵심 판단이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인스트리트는 AI를 단순히 투자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체 트레이딩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도구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AI 소프트웨어 기업과 협업도 확대
제인스트리트는 지난해 12월 AI를 이용해 컴퓨터 코드의 오류를 찾아내는 앤티시스(Antithesis)에 3,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회사는 해당 기업의 주요 고객이 됐으며 제품 개선에도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초기에는 자사의 독점 소프트웨어를 앤티시스의 AI 에이전트에서 실행하는 것을 꺼릴 정도로 보안에 민감했다.
윌 윌슨(Will Wilson) 앤티시스 최고경영자는 제인스트리트의 비밀주의가 한때 협업을 방해할 뻔했다고 말했다.
이후 제인스트리트는 점차 신뢰를 쌓았고, 현재는 앤티시스의 제품 개선을 위한 중요한 의견을 제공하고 있다.
윌슨은 "최근 들어 무언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비밀주의 유지하면서 AI 시장 존재감 확대
제인스트리트는 여전히 경쟁사보다 훨씬 폐쇄적인 조직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독점 알고리즘과 거래전략을 보호해야 하므로 사업의 핵심을 공개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AI 스타트업과 인재를 유치하고 대규모 컴퓨팅 계약과 투자를 확대하려면 외부에 회사의 기술력과 자본력을 알릴 필요가 커지고 있다.
제인스트리트가 비밀주의와 공개 행보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선택할지는 월가와 AI 산업 모두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