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대법원이 조만간 이번 회기를 마무리할 예정인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권한 범위를 다루는 사건 3건을 포함해 주요 판결 7건을 남겨두고 있다.
보수 성향 대법관 6명과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으로 구성된 대법원은 오는 29일을 다음 판결 발표일로 정했다.
미 연방대법원 회기는 매년 10월 시작해 통상 6월 말 끝나지만, 주요 사건의 판결이 남으면 7월 초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남은 사건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 이사와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을 해임하려 한 조치, 출생시민권을 제한한 행정명령이 포함돼 있다.
우편투표와 선거자금 규제를 다루는 사건 2건, 공립학교 여성 스포츠팀의 트랜스젠더 선수 참가 금지, 수사기관의 '지오펜스 영장' 사용을 둘러싼 사건도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권한 확대 여부 주목
트럼프 관련 사건 3건은 대통령이 독립기관 인사를 해임하거나 헌법상 시민권 적용 범위를 행정명령으로 제한할 수 있는지를 다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연준 이사 리사 쿡(Lisa Cook)과 연방거래위원회 위원 리베카 슬로터(Rebecca Slaughter)를 해임하려 했다.
그는 또 미국에서 태어난 일부 이민자 자녀에게 출생시민권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들 사건의 판결은 대통령의 행정부 통제 권한이 어디까지 인정되는지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다시 취임한 이후 여러 긴급 사건에서 하급심이 제동을 건 정책을 일단 시행하도록 허용했다.
지난 25일에는 이민 관련 사건 2건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지난 2월에는 국가비상사태 관련 법률을 근거로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한 조치를 인정하지 않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대한 패배를 안겼다.
연준 이사 해임, 중앙은행 독립성 시험
대법관들은 지난 1월 변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리사 쿡 연준 이사를 해임하려 한 조치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1913년 연준이 설립된 이후 미국 대통령이 연준 이사를 해임하려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준 설립법은 중앙은행이 정치적 압력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연준 이사를 대통령이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해임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법률은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않았으며 해임 절차도 명확히 정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쿡 이사의 주택담보대출 사기 의혹을 해임 사유로 들었다.
해당 의혹은 입증되지 않았으며 쿡 이사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쿡 이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에 자신을 해임하려 하면서 사기 의혹을 구실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연준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연준 판결, 금리정책의 정치적 독립에 영향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해임을 허용할 경우 대통령이 통화정책에 불만을 품고 연준 이사를 교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대로 연준 이사의 임기와 해임 제한을 인정하면 대통령의 직접적인 통제에서 중앙은행을 보호하는 기존 제도가 유지된다.
연준은 기준금리와 통화정책을 결정하며 금융시장과 물가, 고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연준이 행정부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사건이다.
FTC 위원 해임은 트럼프에 유리할 가능성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소속 리베카 슬로터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을 정책적 견해 차이로 해임한 사건도 심리하고 있다.
하급심 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법적 권한을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지난해 12월 변론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에 대체로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법원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슬로터 위원을 해임할 수 있도록 허용한 상태다.
1935년 독립기관 판례 뒤집힐지 주목
트럼프 행정부를 대리한 존 사우어(D. John Sauer) 미 법무부 송무차관은 대법원에 1935년 '험프리스 엑시큐터 대 미국' 판례를 폐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판례는 의회가 일부 독립기관 책임자에게 임기를 보장하고 대통령의 해임 권한을 제한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대법원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이 판례가 적용되는 범위를 좁혀왔지만 판례 자체를 폐기하지는 않았다.
보수 대법관들은 의회가 독립기관 책임자에게 제공한 신분보장이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행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정부 주장에 공감을 표시했다.
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폐기하거나 추가로 약화하면 대통령이 FTC를 비롯한 여러 독립기관의 위원과 책임자를 더욱 자유롭게 해임할 수 있게 된다.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 판결 예정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발령한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도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 수정헌법 제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의 관할권에 속하는 사람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도록 규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체류 이민자 등 일부 비시민권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에게 출생시민권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행정부는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시민권 적용 대상을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헌법과 오랜 대법원 판례에 따라 미국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에게 시민권이 자동으로 부여된다고 맞서고 있다.
판결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권뿐 아니라 미국 시민권 제도의 기본 원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편투표 도착 유예기간도 판단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선거제도와 관련된 사건 2건도 판결을 앞두고 있다.
첫 번째 사건은 선거일 이전에 소인이 찍힌 우편투표 용지를 선거일 이후 최대 5영업일 동안 접수해 개표할 수 있도록 한 미시시피주 법률을 다룬다.
공화당 측은 연방 선거일이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선거일 이후 도착한 투표는 집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도 이 법률에 대한 도전을 지지했다.
하급심 법원은 해당 법률에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의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지난 3월 변론에서 미시시피주의 도착 유예 규정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법원이 이 규정을 무효로 판단하면 다른 주에서도 선거일 이후 도착한 우편투표의 집계를 제한하는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의 전국 우편투표 제한은 하급심서 제동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전국적으로 우편투표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보스턴의 연방법원 판사는 지난 25일 해당 명령의 시행을 차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선거에서 광범위한 부정이 발생했다는 주장을 반복해왔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번 대법원 사건은 트럼프 행정명령 자체가 아니라 미시시피주의 우편투표 접수기한 법률을 대상으로 한다.
다만 판결은 전국 우편투표 규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당과 후보의 공동지출 제한도 심리
두 번째 선거 관련 사건은 정당이 후보자와 협의해 지출할 수 있는 금액을 제한한 연방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지를 다룬다.
이 사건은 JD 밴스(JD Vance) 부통령과 관련된 공화당 측의 소송에서 시작됐다.
공화당 측은 정당과 후보자가 선거운동 메시지와 자금 사용을 조율하는 것을 제한하면 수정헌법 제1조가 보호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고 주장한다.
하급심 법원은 해당 지출 제한을 유지했다.
지난해 12월 변론에서 일부 보수 대법관들은 제한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기존 제한을 유지하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제한이 무효화되면 정당이 후보자와 직접 협의해 선거비용을 지출할 수 있는 범위가 크게 확대될 수 있다.
트랜스젠더 선수 여성팀 참가 금지 판단
대법원은 아이다호주와 웨스트버지니아주가 공립학교와 대학의 여성 스포츠팀에 트랜스젠더 선수의 참가를 금지한 법률도 심리하고 있다.
두 주는 해당 법률이 여성과 여학생들의 공정한 스포츠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이 법률이 트랜스젠더 학생을 차별하며 트랜스젠더 미국인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더 광범위한 정책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대법관들은 지난 1월 변론에서 보수 성향 다수가 해당 주법을 유지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판결은 다른 주의 유사한 법률과 학교 스포츠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휴대전화 위치정보 이용한 '지오펜스 영장'
남은 사건 가운데 하나는 경찰이 범죄현장 주변의 휴대전화 위치정보를 이용해 용의자를 찾는 '지오펜스 영장'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다룬다.
대법원은 지난 4월 버지니아주에서 제기된 사건의 변론을 들었다.
지오펜스 영장은 특정 시간과 장소를 설정한 뒤 해당 구역에 있었던 휴대전화 이용자들의 위치정보를 통신·기술기업에 요구하는 수사방식이다.
수사기관은 처음부터 특정 용의자를 지목하지 않고 범죄현장 주변에 있던 다수의 사람 가운데 잠재적 용의자를 찾아낼 수 있다.
사건의 쟁점은 이러한 광범위한 위치정보 수집이 불합리한 수색과 압수를 금지한 수정헌법 제4조를 위반하는지 여부다.
보수 우위 대법원, 대통령 권한 범위 결정
이번 회기 마지막 판결들은 행정부 권한과 독립기관의 지위, 선거 규칙, 시민권, 소수자 권리, 디지털 사생활 보호 등 미국 사회의 핵심 쟁점을 다룬다.
특히 연준과 FTC 인사 해임, 출생시민권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해온 광범위한 대통령 권한의 법적 한계를 결정할 수 있다.
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을 폭넓게 받아들일 경우 대통령이 독립기관과 이민정책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
반대로 연준 이사 해임이나 출생시민권 제한에 제동을 걸 경우 대법원이 대통령 권한 확대에 일정한 헌법적 한계를 설정하는 결과가 된다.
대법원은 남은 7건의 사건 가운데 일부 판결을 29일 발표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