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리사 쿡(Lisa Cook) 연방준비제도 이사 해임 시도를 막았다.
그러나 별도의 판결에서는 대통령이 다른 연방 독립기관의 책임자와 위원을 사실상 임의로 해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29일 나온 두 판결은 행정부에 대한 대통령의 통제권을 확대하면서도, 중앙은행인 연준은 예외로 인정한 엇갈린 결론이다.
대법원, 쿡 이사 해임 금지 유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쿡 이사를 즉시 해임하도록 허용해달라는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쿡 이사는 본안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연준 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은 이번 결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해임 사유가 법률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본격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두 하급심 법원은 앞서 쿡 이사의 손을 들어주고,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해임 조치를 차단했다.
대법원이 이 결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쿡 이사를 당장 해임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 주택담보대출 의혹 해임 사유로 제시
조 바이든(Joe Biden) 전 대통령은 2022년 쿡을 연준의 7인 이사회 이사로 임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쿡 이사를 해임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대통령이 연준 설립 이후 이사를 해임하려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쿡 이사가 2021년 주택담보대출 서류에 주 거주지를 허위로 기재해 더 유리한 대출 조건을 받았다는 의혹을 해임 사유로 제시했다.
이 의혹은 트럼프 행정부의 주택정책 고위 관계자가 제기했다.
쿡 이사는 불법행위를 부인하고 있다.
쿡 이사의 변호인들은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의도하지 않은 서류상 오류에 불과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정책을 통제하기 위해 자신의 측근을 연준에 임명하려는 구실로 해당 의혹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준법의 '정당한 사유'가 핵심
연방법은 대통령이 연준 이사를 해임하려면 '정당한 사유(for cause)'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쿡 이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해임 시도가 이 조항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연준법은 중앙은행이 정치적 압력에서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할 수 있도록 이사들의 임기를 보호하고 있다.
다만 법률은 정당한 해임 사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다.
이번 대법원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주택담보대출 의혹이 정당한 해임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한 것은 아니다.
본안 소송에서 해임의 적법성을 추가로 다투게 된다.
연준은 대통령 해임권 확대의 예외
대법원은 쿡 사건과 별도로 대통령이 다른 독립기관 관계자들을 정책적 견해 차이 등을 이유로 해임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는 독립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통제권을 크게 확대하는 결정이다.
대통령은 앞으로 연방거래위원회(FTC)를 비롯한 일부 독립기관의 위원과 책임자를 법률상 임기보장 규정에도 불구하고 보다 자유롭게 해임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연준에 대해서는 같은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연준을 다른 독립기관과 구분한 것이다.
트럼프의 행정부 장악 시도에는 승리
두 판결을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부 산하 독립기관에 대한 통제권을 확대하려는 시도에서 대부분 승리를 거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립기관도 헌법상 행정권을 행사하는 만큼 대통령이 해당 기관의 책임자와 위원을 자유롭게 해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대법원이 이 주장을 폭넓게 받아들이면서 의회가 독립기관 관계자에게 부여한 임기보장과 해임 제한의 효력은 크게 약해졌다.
다만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연준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직접적인 통제를 제한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이사들을 교체해 금리정책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에는 제동이 걸렸다.
월가, 연준 독립성 훼손 가능성 우려
쿡 사건은 월가에서도 큰 관심을 받아왔다.
투자자들은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을 미국 국채시장과 금융시장 안정의 핵심 기반으로 평가한다.
대통령이 정책적 견해 차이를 이유로 연준 이사를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다면, 연준이 물가안정보다 단기적인 정치적 목표에 따라 금리를 결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질 수 있다.
대통령이 저금리를 선호하는 인사들로 연준 이사회를 구성하고 높은 물가상승률을 용인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 위험을 반영해 미 국채 매입을 줄이거나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 있다.
국채금리가 오르면 주택담보대출과 기업대출, 소비자금융 비용도 함께 상승할 수 있다.
연준 독립성은 일단 유지
대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쿡 이사를 즉각 해임하고 후임자를 임명할 수 없게 됐다.
연준 이사에 대한 해임 제한도 본안 판결이 나올 때까지 유지된다.
이는 대통령의 독립기관 통제권을 확대하면서도 중앙은행에 대해서는 별도의 보호장치를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은 다른 독립기관 관계자에 대한 대통령의 해임권은 넓혔지만, 연준의 통화정책 독립성까지 대통령의 직접적인 통제 아래 두지는 않았다.
이번 판결로 미국의 독립기관 제도는 대통령 중심으로 크게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지만, 연준은 그 변화에서 주목할 만한 예외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