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여론 악화 속 고용 창출·생산성 향상 강조...실제 도입 효과와 정치적 부담도 영향
인공지능(AI)이 대규모 일자리 감소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해온 미국의 주요 기술기업 경영자들이 최근 고용 창출과 생산성 향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언을 바꾸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6일 보도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상당수 기업인은 AI가 기존 업무를 자동화하면서 대규모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최근 한 달여 동안 기술기업 최고경영자들은 AI가 인간을 대체하기보다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보다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변화가 실제 기업 현장에서 AI의 역할을 더 정확히 이해하게 된 결과인지, 아니면 AI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여론을 완화하기 위한 전략인지를 놓고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샘 올트먼 "사회·경제적 영향에 대한 예상은 틀렸다"
샘 올트먼(Sam Altman) 오픈AI 최고경영자는 지난 5월 말 한 콘퍼런스에서 기술 발전에 대한 예측은 대체로 맞았지만,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영향을 예상하는 데는 상당 부분 오류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CNBC와의 인터뷰에서도 AI 산업이 앞으로도 인간을 모든 업무의 중심에 둘 수 있는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고 말했다.
올트먼은 과거 AI가 노동시장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여러 차례 전망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기업들이 오히려 더 많은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기업들 가운데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곳들이 채용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I가 일부 업무를 자동화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직업과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최근 기술기업 경영자들이 내놓고 있는 핵심 주장이다.
앤스로픽 CEO도 '파멸적 전망'에서 한발 물러서
앤스로픽(Anthropic)의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 최고경영자도 최근 AI 고용 충격에 대한 표현을 완화했다.
아모데이는 2025년 5월 AI가 초급 사무직 일자리의 절반을 없앨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1년 뒤에는 AI를 도입한 기업이 같은 업무를 더 적은 자원으로 수행할 수도 있지만, 동일한 인력과 자원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자의 경우 해고로 이어질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 기업이 사업을 확대하고 새로운 업무를 만들기 위한 창의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모데이는 지난 6월 발표한 글에서 자신이 일자리 감소 가능성을 경고한 것은 정부와 민간 부문이 변화에 대비할 시간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자신을 '파멸의 예언자'로 묘사하려 했던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장기적인 일자리 감소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메타·아마존, 감원하면서도 AI 고용 창출론 강조
기술기업 경영자들의 낙관적인 발언은 대규모 감원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오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메타플랫폼스 최고경영자는 최근 인터뷰에서 기업들이 자동화보다 근로자의 생산성을 더 빠르게 높일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 미래의 일자리는 줄어들기보다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메타는 지난 5월부터 조직 구조를 단순화한다는 명분으로 직원 약 8,000명을 감원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의 앤디 재시(Andy Jassy) 최고경영자도 지난 2월 CNBC 인터뷰에서 AI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시는 1년 전만 해도 AI 도입으로 앞으로 수년간 아마존의 전체 직원 수가 감소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마존은 이후 약 1만6,000명을 감원했지만, 회사 측은 감원이 AI 도입 때문이 아니라 조직 내 관리 단계를 줄이고 기업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기술기업들은 감원으로 절감한 비용을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연구개발 등에 투입하고 있다. 이 때문에 AI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경영자들의 발언과 실제 인력 감축 사이에는 모순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CEO들의 대규모 감원 전망 크게 줄어
AI가 대규모 인력 감축을 초래할 것이라고 보는 경영자들의 비율도 최근 크게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컨설팅업체 EY-파르테논(EY-Parthenon)의 조사에 따르면 AI 투자가 상당한 규모의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최고경영자의 비율은 2025년 1월 약 46%에서 올해 5월 20%로 떨어졌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터(David Autor) 교수는 기업 경영자들이 노동시장이 예상했던 것처럼 빠르게 붕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기업이 판매하려는 새로운 제품이 경제를 파괴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사업적으로도 현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핀테크 기업 램프(Ramp)와 노동시장 정보업체 레벨리오 랩스(Revelio Labs)가 진행한 연구에서는 AI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기업들의 고용 증가율이 아직 AI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지 않은 유사 기업보다 약 1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결과만으로 AI가 전체 경제의 일자리를 늘린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AI에 투자할 자금과 성장 여력이 있는 기업이 원래부터 채용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포드, 자동화 업무 품질 문제로 엔지니어 재채용
AI와 자동화가 예상만큼 빠르게 인간 노동을 대체하지 못한다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짐 팔리(Jim Farley) 포드자동차 최고경영자는 지난해 AI가 미국 화이트칼라 근로자의 절반을 대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포드는 최근 자동화된 업무의 품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수백 명의 엔지니어를 새로 채용했다.
포드 측은 높은 수준의 기술적 전문성을 갖춘 엔지니어가 AI의 능력을 함께 활용할 때 제품과 업무의 품질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AI가 숙련된 근로자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전문 인력의 업무를 보조하는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AI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여론 확대
기술기업 경영자들의 발언 변화는 AI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이 커지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
스탠퍼드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연구진이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이 가능한 한 빠르게 AI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고 답한 민주당 지지자는 약 30%에 그쳤다.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는 약 절반이 AI 개발 가속에 찬성했으며, 기술기업 창업자 가운데서는 77%가 빠른 혁신을 지지했다.
AI 산업을 바라보는 기술기업과 일반 대중 사이에 상당한 인식 차이가 존재하는 셈이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의 모리스 슈바이처(Maurice Schweitzer) 교수는 AI를 둘러싼 논의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초기에는 과도한 기대와 홍보가 많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과 정부의 AI 규제 가능성을 고려하면 기술기업들이 보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내놓는 데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다고 분석했다.
AI가 대규모 실업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가 계속될 경우 데이터센터 건설과 전력 사용, 규제 완화 등에 대한 지역사회와 정치권의 반발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 실제 AI 투자 효과 측정에 어려움
AI에 대한 경영자들의 전망이 바뀐 또 다른 이유는 기업들이 실제 현장에서 AI를 도입하는 작업이 예상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기업뿐 아니라 일반 기업들도 새로운 AI 도구를 기존 업무 과정에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경험하고 있다.
기업들은 AI가 어떤 업무에서는 효과적이지만 다른 업무에서는 오류를 일으키거나 인간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파악하고 있다.
기술·경영 컨설팅업체 이머진(Emergn)이 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상당수 기업은 현재 진행 중인 AI 투자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기업 경영자 가운데 약 20%는 자신들이 보고받는 AI 도입 결과가 실제 상황보다 긍정적으로 작성돼 있다고 답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AI 프로젝트의 부정적인 결과가 완화돼 보고되거나, 직원들이 실패 사례를 경영진에게 알리지 않는 현상도 나타난 것으로 조사됐다.
예일대 최고경영자리더십연구소의 스티븐 헨리케스(Stephen Henriques) 선임연구원은 경영자가 실적발표에서 AI의 능력과 예상 수익률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만, 그러한 효과가 경제 전반에 실제로 확산되는 과정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베이조스 "AI가 오히려 인력 부족 초래할 수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는 오랫동안 AI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는 지난 6월 AI가 장기적으로는 일자리를 없애기보다 오히려 노동력 부족 현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베이조스는 5월 CNBC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AI가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을까 두려워하는 이유는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반복해서 그런 경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학계에서는 AI가 장기적으로 고용에 미칠 영향을 놓고 의견이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는 AI가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사무직 업무를 자동화해 특정 직종의 고용을 줄일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다른 경제학자들은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기업 확대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현재까지의 기업 고용 자료만으로는 어느 전망이 맞는지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다만 빅테크 경영자들의 메시지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AI가 인간 근로자를 대체할 것이라는 경고에서 벗어나, 인간이 AI를 활용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내는 미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가 실제 노동시장의 흐름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AI 산업에 대한 소비자와 정치권의 반발을 낮추기 위한 새로운 홍보 전략인지는 앞으로 기업들의 실제 채용과 감원, 생산성 자료를 통해 확인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