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새 애플워치에 실시간 음성을 처리하고 대화를 전사(transcribe)하는 인공지능(AI) 기능을 탑재하면서, 프라이버시에 민감했던 이 회사가 "기술이 항상 듣고 있는" 현실을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IT전문매체 테크크런치(TechCrunch)가 9일(수) 보도했다.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애플은 이날 열린 신제품 공개 행사 "서프라이즈 앤 샤인(Surprise and Shine)"에서 새 하드웨어 라인업을 선보였다. 이번 행사의 진짜 화제는 폴더블 아이폰이 아니라, 프라이버시를 중시해온 애플이 워치에 실시간 음성 처리와 대화 전사 기능을 넣기로 한 결정이었다고 매체는 짚었다.
◇ 오디오 인텔리전스·라이브 리와인드·시리 리캡
애플이 이번에 새 워치에 도입한 기능은 '오디오 인텔리전스(Audio Intelligence)', '라이브 리와인드(Live Rewind)', '시리 리캡(Siri Recap)' 세 가지다. 테크크런치는 이 기능들이 접근성·유용성과, 다소 침해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영역 사이의 경계에 걸쳐 있다고 평가했다.
이 중 오디오 인텔리전스는 온디바이스 AI를 이용해 사이렌, 알람, 초인종, 아기 울음소리 등을 인식해 착용자에게 알려주는 기능이다. 아이폰이 근처에 없어도 작동하며, 화재경보기나 일산화탄소 감지기가 울릴 때는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기능이라 청각장애인이나 난청인에게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매체는 전했다. 이 기능 자체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매체의 평가다.
문제는 라이브 리와인드와 시리 리캡이다. 라이브 리와인드는 디지털 크라운을 두 번 눌러 지난 15초간의 대화를 되돌려 전사할 수 있는 기능으로, 전사 내용은 애플의 새 독립형 시리(Siri) 앱에 저장돼 나중에 다시 볼 수 있다. 애플은 이 기능이 "책 추천, 동료의 좋은 아이디어, 처음에 놓친 이야기" 등을 기억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테크크런치는 이 기능이 사실상 누군가 의도치 않게 한 발언을 그대로 포착해 기록에 남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시리 리캡은 주변 소리를 상시 청취(ambient listening)해 대화의 "핵심 내용"을 요약해 노트로 만들어주는 기능이다. 아이폰의 시리 앱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AI가 자동으로 제목과 요약, 핵심 항목을 생성한다. 다만 정확한 대화 전사는 아니라고 매체는 전했다. 애플은 이 기능이 회의 요점이나 학부모 상담 내용을 기록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 동의와 법적 책임 문제
테크크런치는 이런 기능이 동의(consent) 문제를 야기한다고 짚었다. 윤리적 측면뿐 아니라 법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AI 기기 제조사 플라우드(Plaud)는 녹음 전에 법적으로 요구되는 동의를 받으라고 고객에게 안내하고 있으며, 아마존의 AI 기기 비(Bee)는 미성년자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관련한 법 준수 책임이 아마존이 아닌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있다는 점을 이용약관에 명시하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애플은 오디오 자체를 저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 등장한 '텍스트만 남는' 전사 기록을 법원이 어떻게 다룰지는 불분명하다고 매체는 밝혔다. 이 노트가 법정 증거로 제출될 가능성은 있지만, 음성이 남아 있지 않아 진위 확인이 더 어려울 수 있고, 증거 채택 규정도 주(州)마다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 "항상 녹음될 수 있다"는 인식의 사회적 파장
법적 쟁점을 넘어, 손목에서 언제든 녹음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문화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테크크런치는 짚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녹음 기기의 존재, 소셜미디어와 데이터 감시 문화는 이미 사람들의 실생활 행동 방식을 바꿔놓았다. 언제든 녹음될 수 있다는 인식은 타인과의 상호작용과 자기표현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매체는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려면 휴대폰을 들어 피사체를 향해야 하는 등 비교적 눈에 띄는 동작이 필요하지만, 워치의 디지털 크라운을 눌러 음성을 포착해 전사하는 행위는 훨씬 은밀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이 기능이 작동할 때 알림음과 함께 마이크 모양의 전체화면 애니메이션이 뜬다고 설명하지만, 이 정도로 충분한 경고가 될지는 의문이라는 게 매체의 시각이다.
또한 테크크런치는 Flock 카메라 같은 감시 기술, AI 데이터센터, AI 앱 전반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청취 기술을 일상화하는 것이 프라이버시를 중시해온 애플에게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고 짚었다.
◇ 애플 "프라이버시 배려했다"…소비자 반응은 미지수
애플은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기능을 설계했다고 강조했다. 시리 리캡은 다른 AI 웨어러블 기기들처럼 기본값으로 항상 켜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직장에서만 또는 낮 시간에만 등으로 활성화 시점을 직접 선택할 수 있고, 제어센터에서 언제든 켜고 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애플은 또 음성 녹음을 생성하거나 저장하지 않으며, 원본 음성에는 애플조차 접근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화자를 식별하거나 특정하지도 않으며, 생성된 전사 내용과 요약본은 종단간 암호화로 보호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런 조치만으로 소비자들이 이 기능을 "섬뜩하다"고 느끼지 않을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테크크런치는 지적했다. 매체는 애플이 유용성과 프라이버시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은 것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소비자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하며 기사를 마무리했다.
한편 새로운 AI 기기 스타트업 다수는 AI 기반 전사가 소비자용 AI의 핵심 활용 사례라는 판단 아래 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부분 회의록 작성이나 강의·인터뷰 녹음 전사에 활용되고 있으며, AI 펜던트 프렌드(Friend)와 아마존의 비(Bee)처럼 하루 일과를 수동으로 기록해주는 상시 AI 동반자 형태로 영역을 넓힌 사례도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테크크런치는 애플이 이런 흐름 속에서, 혹은 오픈AI(OpenAI) 등 경쟁사가 유사한 AI 기기를 먼저 내놓을 것을 우려해 이 분야에 뛰어든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