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쟁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 AI 투자 붐이 물가 압력 키워

지난해 세 차례 금리 인하서 방향 전환...워시 의장 "2% 물가 목표 조기 복귀 지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6일(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연준이 금리를 올린 것은 2023년 7월 이후 3년여 만이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이날 이틀간의 정례회의를 마친 뒤 연방기금금리 목표 범위를 기존 3.50~3.75%에서 3.75~4.00%로 0.25%포인트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결정은 투표권을 가진 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이번 금리 인상은 지난해 경기와 고용시장 둔화 가능성에 대응해 세 차례 금리를 내렸던 연준이 다시 긴축 방향으로 선회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캐빈 워시
(캐빈 워시 연준 의장. 자료화면)

연준은 성명에서 이번 조치가 물가상승률을 보다 빠르게 2% 목표로 되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정학적 상황 등을 포함해 경제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다고 평가하면서도, 이전 성명에서 물가 상승의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로 지목했던 공급 충격 관련 표현은 삭제했다.

올해 한 차례 추가 인상 전망

시장의 관심은 이번 인상 자체보다 앞으로 금리를 얼마나 더 올릴 것인지에 쏠렸다.

연준이 이날 함께 공개한 경제전망과 금리 전망에 따르면 대다수 정책 담당자들은 올해 안에 0.25%포인트의 추가 금리 인상을 예상했다. 이에 따라 연방기금금리 목표 범위가 연말에는 4.00~4.25%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제시됐다.

MarketWatch에 따르면 19명의 연준 관계자 가운데 16명이 올해 남은 회의에서 추가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2027년 금리 전망에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려 장기간 고금리 수준이 유지될 가능성도 나타났다.

따라서 이번 조치가 일회성 조정이라기보다 지난해 시작했던 금리 인하 사이클을 되돌리는 새로운 긴축 국면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물가, 지난해 중반 이후 개선 멈춰

연준이 다시 금리를 올리게 된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물가다.

연준의 물가 안정 목표는 연 2%이지만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중반 이후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지 못했다. 연준이 선호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도 목표치를 크게 웃돌고 있다.

연준은 지난 2025년 말 고용시장 둔화 가능성에 대비해 세 차례 금리를 내렸지만 이후 물가가 예상만큼 안정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강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에너지 가격까지 급등하면서 물가 압력이 다시 커졌다.

로이터는 16일 연준의 금리 인상 배경으로 지속적인 물가 상승과 에너지 가격 급등, AI 관련 대규모 투자 증가를 꼽았다.

미국의 8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1.2% 증가해 지난 3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소비가 예상보다 강하게 유지되면서 일부 투자은행들은 3분기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3%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수입물가도 8월 한 달 동안 0.7% 상승했으며 전년 동월 대비로는 7.0% 올라 2022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자본재와 소비재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다.

이란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 급등이 결정적 변수

최근 연준의 전망을 크게 바꾼 것은 에너지 가격이다.

이란을 둘러싼 중동 전쟁이 다시 격화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했고 브렌트유는 최근 배럴당 100달러를 크게 넘어섰다. 원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 상승은 휘발유와 운송비뿐 아니라 기업 생산비용까지 끌어올리면서 물가 전반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윌리엄 더들리(William Dudley) 전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최근 통화정책 전망이 바뀐 가장 중요한 이유로 이란전쟁 재격화와 이에 따른 에너지 가격 충격을 지목했다.

연준 역시 이날 성명에서 지정학적 상황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AI 투자 붐도 경기& 물가 동시에 자극

에너지 가격과 함께 미국 경제의 또 다른 변수로 떠오른 것은 인공지능(AI) 투자다.

대형 기술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설비 등에 수천억달러를 투자하면서 미국 기업의 자본지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AI 투자는 미국 경제성장률과 증시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건설자재와 장비, 전력, 노동력 등에 대한 수요를 급격하게 늘리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특히 8월 미국의 수입 자본재 가격은 0.9% 상승했고 비전기 기계류는 1.2% 올랐다. 로이터는 이 같은 자본재 가격 상승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AI 투자에 따른 강한 장비 수요를 지목했다.

결과적으로 연준은 한쪽에서는 에너지 가격 충격을, 다른 한쪽에서는 AI 투자와 소비가 만들어내는 강한 수요를 동시에 상대하게 된 셈이다.

워시 취임 4개월 만에 금리 인상

이번 결정은 케빈 워시(Kevin Warsh) 연준 의장이 지난 5월 취임한 이후 처음 단행한 금리 조정이다.

워시 의장은 취임 이후 연준의 2% 물가 목표를 확실하게 달성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밝혀왔다. 지난달 잭슨홀 연설에서도 물가상승률이 연준 목표를 너무 오랫동안 웃돌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물가 안정에 보다 강한 의지를 보였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강한 경제지표와 예상보다 높은 물가, 국제유가 급등이 이어지면서 시장 전망은 급격히 바뀌었다. 지난 14일 실시된 로이터 조사에서는 101명의 경제전문가 가운데 86명, 약 85%가 0.25%포인트 인상을 예상했다.

금리선물시장에서도 회의를 앞두고 0.25%포인트 인상 가능성이 90%를 넘어섰다.

트럼프의 금리 인하 요구와 다른 방향

이번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그동안 연준에 요구해온 금리 방향과도 차이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차입비용을 낮춰야 한다며 연준에 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고, 워시 의장을 지명할 당시에도 보다 낮은 금리를 선호하는 인물로 평가했다.

그러나 연준은 이번 회의에서 오히려 금리를 올렸고, 연말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제시했다. 로이터는 이번 결정이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인 동시에 연준이 물가 안정 목표를 우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전했다.

워시 의장 역시 이날 정책 결정 이후 연준의 목표는 가능한 한 신속하게 물가상승률을 2%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높은 금리 장기화 가능성...모기지·기업대출 부담도 지속

연준의 추가 인상 전망은 미국 가계와 기업의 차입비용이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을 의미한다.

연방기금금리가 직접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 국채금리와 금융시장 기대에 영향을 미쳐 모기지와 자동차대출, 신용카드, 기업대출 금리에도 영향을 준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번 주 한때 5%를 넘어 2007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다. 국제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우려, 연준의 금리 인상 전망이 동시에 국채 가격을 압박한 결과다.

금리를 올리면 물가를 낮추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를 위축시켜 경제성장을 둔화시킬 위험도 있다.

특히 에너지 가격 급등이 공급 측 충격이라는 점에서 금리 인상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로이터 Breakingviews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지속될 경우 물가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소비와 성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시장의 연속적인 금리 인상 기대가 지나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연준 결정으로 미국 통화정책의 초점은 이제 '금리를 올릴 것인가'에서 '얼마나 더 올리고 얼마나 오래 높은 금리를 유지할 것인가'로 이동하게 됐다.

연준 정책 담당자들의 현재 전망대로라면 올해 안에 최소 한 차례 추가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앞으로 국제유가와 중동 정세, AI 투자와 소비 강도, 물가 지표가 향후 금리 경로를 결정할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