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등은 대체 수송로 확보...이란은 행정 장벽과 비용 급등으로 경제 압박 가중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맞서 육상 교역을 확대하겠다는 이란의 계획이 국경 곳곳에서 심각한 병목현상에 부딪히고 있다. 수백 대의 화물차가 파키스탄과 튀르키예,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 발이 묶이면서 이란 경제에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숨통마저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 이란이 해상 수출입 감소를 육상 운송으로 만회하려 하고 있지만, 열악한 인프라와 복잡한 행정 절차, 높은 운송비 때문에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이란과 파키스탄 국경에는 수백 명의 이란 화물차 운전자가 체류하고 있다. 운전자들은 양국 정부의 행정 절차와 비용 부담이 갈수록 커지면서 화물을 제때 운송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국경 통과가 지연되는 동안 살구 수톤이 상했고, 철광석과 시멘트, 액화가스 등 수익성이 높은 수출 화물도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에 쌓여 있다.

호르무즈 해협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대체 운송 확보 시도. 자료화면)

이란 화물운송단체연합이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영상에서 한 운전자는 "이란은 현재 상황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고, 파키스탄은 화물을 내리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해상 수출 붕괴...기본 생필품 수입도 차질

페르시아만을 둘러싼 경제전쟁의 승패는 각국이 호르무즈 해협 대신 육상으로 얼마나 많은 수출품을 운송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반도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더 많은 원유를 운송하고 있다. 미 해군은 일부 걸프 국가들이 해협을 통해 석유를 수송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반면 이란의 우회 전략은 난항을 겪고 있다. 미국이 새로운 제재를 통해 이란 경제의 고립을 강화하고, 이란의 미 해군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 유조선을 공격하면서 해상 수출이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란의 호르무즈 우회 계획은 항공 운송에서도 차질을 빚고 있다. 미국의 제재 대상인 이란 마한항공은 오만과 튀르키예 노선 운항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마한항공은 여객과 화물 운송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이에 앞서 마한항공을 지원한 것으로 지목된 기업들을 추가 제재했다.

봉쇄는 이란의 기초 생필품 수입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이란이 수입하는 기본 물자의 약 70%는 평소 봉쇄된 항구를 통해 들어온다. 식량과 인도주의 물자는 원칙적으로 제재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실제로는 해운업체들이 이란 운항을 꺼리고 있다.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영상에는 이란 최대 상업 컨테이너항인 샤히드 라자이항의 크레인이 멈춰 서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이란 교통업계 관계자들은 지난달 파키스탄과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항구에 이란으로 향하던 컨테이너 수천 개가 발이 묶였다고 밝혔다.

카스피해와 중국행 철도 확대했지만 역부족

이란은 해상 교역 감소를 보완하기 위해 카스피해와 육상 철도 노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란 당국에 따르면 최근 5개월 동안 카스피해를 통한 화물 운송량은 70% 증가했다. 이란은 러시아로부터 밀과 옥수수, 종자, 식용유 등을 대량으로 수입한다.

카스피해 연안 길란주의 하디 하그셰나스 주지사는 지난 8월 이란 국영 IRNA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번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헤란과 중국 시안을 연결하는 화물열차 운행도 늘었다. 봉쇄 전에는 주 1회 운행했지만, 현재는 3∼4일에 한 번씩 운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은 이 노선을 통해 중국의 산업용 기계와 전자제품, 자동차 부품 등을 수입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체 수송로 역시 정치적 변수와 기반시설 부족에 취약하다.

이라크는 이란이 자국 영토를 이용해 사우디아라비아를 공격했다며 최근 이란 국경의 화물터미널을 일시적으로 폐쇄했다. 이 조치로 이라크로 향하던 이란산 양파 운송 트럭들이 되돌아가야 했다.

튀르키예 국경에 트럭 3,700대...최대 20일 대기

이란 육상 국경의 혼잡은 최근의 폐쇄 조치 이전부터 심각했다.

이란에서 파키스탄으로 통하는 주요 국경검문소 중 하나인 피신을 이용하는 트럭은 올해 여름 하루 약 40대에서 최대 130대로 증가했다. 하지만 국경 세관 인력과 시설은 늘어난 물동량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란 국제운송업체협회의 에산 말렉자데 회장은 튀르키예 국경의 이란 측에 약 3,700대의 트럭이 발이 묶여 있으며, 통관 지연 기간이 최대 20일에 달한다고 밝혔다.

파키스탄으로 연결되는 주요 국경검문소에는 액화가스와 시멘트를 실은 트럭 약 700대가 상시 대기하고 있지만, 실제 국경 통과가 허용되는 차량은 40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트럭 운전자는 육류를 싣고 이란으로 향하다 파키스탄 측 국경에서 며칠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고 밝혔다. 식품 공급 차질이 이어지는 이란에서는 육류 가격을 포함한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도 이란산 철광석을 수출하려는 운전자들이 며칠씩 대기하고 있다.

파키스탄 진입을 기다리는 일부 이란 운전자는 기온이 화씨 122도, 섭씨 약 50도까지 오르는 상황에서도 물과 음식, 위생시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화물운송단체연합은 파키스탄 당국이 일부 운전자에게 국경 통과 비용으로 1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파키스탄 외교부 대변인은 그러나 이란 국경에서 새로 부과된 비용이나 추가 제한 조치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육상 운송비, 해상의 네 배

중국으로 이어지는 관문인 투르크메니스탄 국경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운송업체들은 창고 부족과 미비한 철도화물 등록 절차로 인해 화물이 지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이란 사업가는 중국산 자동차 부품을 반입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육상 운송의 병목과 우회 과정에서 발생한 추가 비용은 이란의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수입업계 전문가 모하마드 레자 호다라흠은 일부 품목의 경우 육상 운송 지연과 우회 비용이 테헤란 최종 판매가격의 최대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마지드레자 하리리 이란·중국상공회의소 회장은 미국의 해상 봉쇄로 이란이 연간 180억 달러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에서 이란으로 컨테이너 한 개를 운송하는 비용은 해상 운송의 경우 약 3,000달러지만 육로를 이용하면 1만2,000달러에 달한다.

이러한 비용의 상당 부분은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란 통계 당국에 따르면 지난 8월 식품 물가상승률은 128%까지 치솟았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이란이 직면할 문제는 단순한 수출 감소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육상 국경의 물류 능력이 한계에 도달한 가운데 식량과 산업용 부품 수입까지 차질을 빚으면서, 경제적 불만이 이란 지도부에 대한 정치적 압력으로 번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