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파장이 갈수록 번지고 있다. 기내 서비스를 문제 삼아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고성을 지르고, 활주로로 향하던 항공기의 기수를 돌리게 한 뒤 서비스 책임자인 사무장을 내리도록 한 '월권' 행위가 알려지면서 조 전 부사장은 여론의 호된 뭇매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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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 전 부사장이 승무원과 사무장을 무릎꿇리고 매뉴얼로 보이는 물건을 집어 던지기까지 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참여연대가 조 전 부사장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검찰은 대한항공 본사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조 전 부사장을 출국금지 시켰다.

유튜브에는 '땅콩항공 CF'라는 동영상이 조회수 30만을 돌파하는 등 각종 패러디물이 쏟아지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뉴욕발 한국행 비행기 최고의 승무원이 돼보자.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을때 가볍게 즐길수 있는 간식으로 무엇이 좋을까'를 묻고 봉지에 담긴 땅콩을 클릭하면 "너 내려"라는 문구가 나오는 '승무원 타이쿤'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잘못한 승무원과 사무장을 다소 과하게 혼낸 사건으로 상황을 마무리 하려했던 대한항공측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조 전 부사장이 그룹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당초 뭉그적 거렸던 국토부 조사에도 출석하기로 했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직접 “제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증시에서 대한항공 주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뉴욕 일부 한인단체는 대한항공 불매 운동까지 나섰다. 이 사건이 외신과 SNS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가면서 국내 1위 항공사이자 국적기를 가진 대한항공의 브랜드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고 말았다. 오너 일가의 부적절한 처신과 오너 눈치만 보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대한항공이 치르고 있고, 또 앞으로 또 치러야할 혹독한 대가인 것이다.

한국에서 땅콩 회항 사건이 화제라면 미국에서는 하버드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의 ‘중국음식점 4달러 사건'이 네티즌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

한시간 강연료가 무려 800달러에 달하는 마케팅 분야 권위자이자 변호사인 그가 중국음식점 온라인 주문 음식이 자신이 알았던 가격보다 4달러가 비싸다는 이유로 음식점 주인에게 이메일을 보내 배상을 요구하고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사건이 알려진 뒤 비난 여론이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도 한 식당에서 쿠폰을 세트메뉴에 적용해 주지 않았다며 식당 주인을 협박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땅콩 회항 파문과 4달러 사건의 공통점은 남들보다 충분히 더 가진 이가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군림하고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려던 갑질로 인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최근 한 방송사의 코미디 프로그램 가운데 ‘갑과을'이라는 코너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식당주인이 에어컨 수리를 위해 AS기사들을 불러다 온갖 모욕을 주며 갑질을 한다. 그런데 수리가 끝난 뒤 기사들이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서 상황은 반전되고 졸지에 식당주인이 을이돼 그들로부터 앙갚음을 당한다는 식의 내용이다.

을의 반전이 시청자들에게 쾌감과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땅콩 회항 사건에 이토록 순식간에 분노의 공감대를 이루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나 자신의 아들 딸이 승무원이 될수 있고, 사무장이 될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재벌그룹 오너와 직원같은 극단적 갑을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철저히 서열화 돼 있는 대학에 들어가고난 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공무원과 산하기관 직원으로 갈리면서 철저히 강자와 약자로 나뉘고, 또 같은 조직 내부에서도 갑과 을이 엄연히 존재하는 고달픈 현실의 사람들에게 이 사건은 분노하기에 딱 좋은 소재였을 것이다.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책무가 요구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까진 나가지 않더라도 타인에 대한 기본적 배려와 존중이 있었더라면 최소한 이런 비극적 코미디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봉건시대도 아닌데 마치 주종관계라도 되는냥 행동한 재벌 3세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인해 치르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