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예원 기자] = 서방국의 인질 납치 살해을 일삼던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아시아로 눈길을 돌렸다. IS는 일본인 유카와 하루나(湯川遙菜·42) 씨, 고토 겐지(後藤健二·47) 씨 인질 2명을 납치한 후 일본정부에 인질 2명의 몸값으로 거액의 현금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살해한 하루나씨 모습이 담긴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이제 이들은 남은 인질인 겐지씨의 몸값으로 요르단에 수감된 사형수 사지다 알리샤위(45)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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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도로 IS 고위 관계자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이슬람법학자인 나카타 고(中田考) 전 도시샤(同志社)대학 교수는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인질 석방을 위한 중개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또 겐지씨의 친구인 니시마에 다쿠(西前拓·52) 씨가 그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나는 겐지다'(I AM KENJI)라는 문장을 쓴 종이를 들고 찍어 페이스북에 공개하면서 세계적인 '나는 겐지다' 운동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표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국내외에서 나오는 이런 부류의 모든 제안에 대해 상당히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재 IS-일본-요르단으로 확장된 협상은 일본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와 요르단 정부의 잠잠한 노코멘트 대응을 볼 때 현재로서는 장기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 IS에 대한 각국 대응 ’온도차’ 심해
 
일본 정부는 IS가 조건으로 내건 테러리스트 알리샤위 석방에 대해 요르단에 정식 요청할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사태 해결을 위해 요르단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하겠다는 뜻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요르단 정부는 일본과 협력해 대응한다는 원론적인 답변 외에는 ‘노 코멘트’ 로 일관하고 있다. 알리샤위는 IS에 생포된 요르단 공군 조종사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를 구출할 교환 상대 1순위로 꼽히는 인물이다. 요르단 정부가 IS 요구대로 일본인 인질을 위해 알리샤위를 석방한다면 중대 테러범을 놓아줬다는 비판을 떠안게 되는 것은 물론 알카사스베 중위를 구할 기회도 상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 단계에서 알리샤위를 바로 석방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남겨진 카드는 무엇일까. 이라크 안보문제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이슬람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는 수니파 부족의 ‘중개’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터키의 경우, 수니파부족의 중개로 9월 IS에 납치된 총영사 등 터키인 인질 49명을 구출했다. 다만 협상을 성사시키려면 별도의 물밑거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IS는 터키 인질 49명을 풀어주면서 시리아에 붙잡힌 IS 포로 50명을 교환했다.
 
IS 공습을 주도한 미국은 몸값 지불은 물론 인질석방을 위한 수니파부족의 중개 카드에도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협상에 응하면 수니파 부족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IS에 혜택이 생길 수 있고, 또 다시 새로운 납치사건이 발생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데니스 맥도너 미국 백악관 비서실장은 25일(현지시간) 알리샤위 석방과 관련 “결정은 일본의 몫” 이라면서도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라고 폭스뉴스에 출연해 말했다. 또 미국 정부는 지난해 IS에 의해 미 기자 제임스 폴리씨가 납치됐을 당시에도, 그의 가족들에게 이른바 ‘몸값지불 거부원칙’ 을 강요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일으켰다. 그만큼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 는 일관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유럽도 2013년 6월 열린 G8수뇌회담에서 몸값 지불은 없다며 ‘테러리스트 말살’ 을 표명한바 있다. 다만 요르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슬람국에 몸값을 지불한 나라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 언급해, 프랑스 등 유럽국가는 겉으로는 부정하고 있지만, 몸값을 지불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러한 각국의 각각 다른 입장차이는 IS퇴치를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미묘한 외교 균열을 일으킬 수도 있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는 IS의 전략이 일본과 미국의 균열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보고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JM 버거 연구원은 텔레그래프와 인터뷰에서 "IS의 전략은 일본 정부와 국제사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여론의 이목을 끌고, 일본·미국·요르단 등 서방 동맹국간 균열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 일본 정부, 겐지 살리기 ‘불투명’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남은 인질 석방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표명했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이른바 ‘초법적 조치’로 수감자를 석방해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은 전례가 있다. 일본은 테러리스트와의 거래라는 정치적 부담이 얼마나 버거운 것인지 이미 알고있다.
 
1977년,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당시 총리는 적군파가 프랑스 파리를 출발해 도쿄로 가던 일본항공 여객기를 납치하고 승객을 인질로 잡았을 때  “인명은 지구보다 중요하다’ 며 몸값 600만 달러를 내고 활동가 6명을 석방했다. 석방된 이들은 다시 적군파로 돌아가 이후에도 테러 사건에 관여했고 일본은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는 테러리스트와 거래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된다는 인식을 남겼다.
 
테러 세력과 맞서는 과정에서 일본인이 희생된 사례도 있다.
 
2004 년 IS의 전신 ‘이라크 알카에다’가 일본인 고다 쇼세이(香田證生·당시 24) 씨를 인질로 잡고 자위대를 이라크에서 철수시키라고 요구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는 '테러에 굴하지 않겠다'며 자위대 철수를 거부했고 고다 씨는 결국 참수됐다. 고이즈미 일본 전총리의 이러한 결단은 인질 교환이 테러 세력과의 거래로 비칠 수 있고, 응하면 이들이 영향력을 국제사회에 과시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알리샤위를 석방할지 결정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고 요르단 정부라는 점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IS 공습을 주도한 미국이 알리샤위 석방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도 큰 변수다. 집권 자민당의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간사장이 "테러리스트와 거래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다"며 우려감을 표명한 것은 이런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겐지 살리기' 에 총력을 다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요르단을 상대로 교섭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일단 요르단을 비롯한 관계국과 인질을 살리는 방안에 관해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섭 전개 과정과 결과에 따라 이들 국가 사이에 긴장이 고조될수 있기 때문에 현재 일본 정부가 이들 정책에 배치하는 카드를 내놓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일본이 서방 동맹국간의 균열을 노린 IS의 치밀한 계산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아베 정권의 중동 외교력과 국제사회의 협조는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