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빙 판세로 관측됐던 새누리당의 원내 지도부 선거가 '비박(비 박근혜)계'의 예상밖 낙승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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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주호영의 뒤를 잇는 차기 원내대표·정책위의장 경선에서 '탈박(탈 박근혜)'과 비박으로 분류되는 유승민·원유철 복식조가 '신박(새 친박)'과 친박 핵심으로 분류되는 이주영·홍문종 복식조를 강력한 '스매싱'으로 여유 있게 따돌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새해 초 김무성 대표의 '수첩논란' 때 등장했던 'KY(김무성-유승민)라인'이 이날 원내대표 경선을 통해 탄생했다.

양측은 2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 대통령 집권 3년차를 맞은 당·청 관계를 고리로 자신이 원내대표·정책위의장 적임자라고 내세웠다. 의총 시작 전부터 치열한 선거 운동을 펼치면서 막판 표심 잡기에 주력했다.

결과는 유·원 의원의 승리로 돌아갔다. 새누리당 의원 149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유·원 의원은 84표를 획득, 65표를 얻는 데 그친 이·홍 의원을 예상보다 큰 표차로 제쳤다.

친박계는 내각에 들어간 국무위원들이 나설 정도로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4번째 도전장을 낸 이주영 의원의 표심 공략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또 한 차례 고배를 마시게 됐다.

◇ 유승민·원유철, 예상 밖 낙승…친박계 또 고배 = 이번 원내대표 경선은 유승민·이주영 의원이 원내대표를, 원유철·홍문종 의원이 정책위의장 자리를 놓고 맞붙으면서 자신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큰틀에서 '비박 대 친박'의 구도로 치러졌다.

스스로 '원박(원조 친박)'이라고 강조한 유 의원이 현재로선 박 대통령과 일정부분 거리를 두는 것으로 해석되는 가운데 비박계의 원 의원이 러닝메이트로 합류하면서 '비박 복식조'가 꾸려졌다.

이에 맞선 이 의원은 애초 뚜렷한 계파가 분류되지 않았으나, 박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에 기용한 것으로 계기로 '신박'으로 불렸다. 여기에 친박 핵심인 홍 의원이 가세하면서 '친박 동반티켓'이 됐다.

예 상을 깨고 이완구 전 원내대표가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에 지명되면서 선거 운동은 숨 가쁘게 진행됐다. 일찌감치 원내대표 출마를 준비해 온 유 의원과 이 의원의 양강 구도로 굳어지면서 각자 원내대표 출마를 염두에 둔 원 의원과 홍 의원은 '수도권 단일화'에 실패한 뒤 유 의원과 이 의원의 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로 선회했다.

친박계와 비박계의 팽팽한 세력 구도에 비춰 이번 경선은 박빙의 판세가 예측됐다. 특히 이 의원이 원내대표직에 4번째 도전하게 됐다는 '동정론'에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물밑 지원한다는 소문이 돌아 일각에선 이 의원 쪽에 기울었다는 예상도 나왔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유·원 의원은 이·홍 의원을 큰 표차(19표)로 제쳤다. 친박계로선 지난해 5월 국회의장 선거에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의화 의장에 패하고, 7월 전당대회에서 서청원 최고위원이 김무성 대표에 패배한 데 이어 잇따라 고배를 마시게 된 셈이다.

◇유승민, 이주영측 '네거티브' 공세 받아쳐 = 투표에 앞서 진행된 공개 토론회에서 기호 2번을 배정받은 이주영 의원은 기호 1번의 유승민 의원을 향해 '네거티브' 파상공세를 폈다.

그러나 3선의 유승민 의원이 이에 질세라 선수(選數)에서 선배인 4선의 이주영 의원의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유 의원은 자신이 원내대표가 될 경우 당·청 관계가 '콩가루 집안'이 될 것이라는 이 의원의 공격에 "선거운동 기간 두 선배님이 제게 쓴소리를 진짜 많이 했다. 원내대표가 되면 그 쓴소리를 후배한테 하지 마시고 대통령에게 해달라"고 여유롭게 역공으로 맞섰다.

"3 년간 세어보니 3~4번밖에 쓴소리 안 했는데, 그걸로 저더러 '콩가루 집안'이라 그러면 어떡하느냐"고 자신을 향한 우려섞인 시선을 불식시키려 하면서 "이주영 선배님, 작년에 (세월호 수습으로)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다. 야구를 할 때도 투수가 너무 오래 던지면 한번 바꿔줘야 한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유 의원은 친박계가 국무위원들까지 나서 이 의원을 지지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듯 "국무위원들께서 투표하신다고 들었는데 박심(朴心·박근혜 대통령의 의중), 당심(黨心) 여러 말이 있지만, 우리가 제일 두려운 것은 민심"이라고 강조, 이 의원에 대한 청와대와 친박계의 지지를 차단하려 애썼다.

또 유 의원은 "대통령께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며 "매일 만나려고 한다. 대통령 비서실장님, 수석님들, 장관님들과 매일 통화하고 매일 만나겠다"고 밝혀 박 대통령을 향한 '변함없는 마음'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김무성·이완구 중립 선언…서청원·최경환도 참석 = 이날 의총장은 이번 경선이 당내 친박·비박계 역학 구도는 물론 향후 당·청 관계 등에서 갖는 정치적 함의가 작지 않다는 점을 반영하듯 의원과 취재진 등 수백명이 운집했다.

예상보다 경선 일정이 앞당겨져 선거 운동 기간이 짧은 탓에 두 후보 진영은 선거 당일 새벽잠을 설쳐가면서 의원들이 모이는 장소를 찾아가 한 표를 호소했다.

유 의원은 이날 오전 7시30분 열린 당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아침소리' 모임 장소에 이어 교문위 당정 협의 회의장까지 찾아가 의원들과 한 명씩 악수를 하면서 지지를 부탁했다.

이 의원도 이날 아침소리 모임에서 소장파 의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두 후보 진영은 의총장 앞에 나란히 서 입장하는 의원들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마지막 선거운동을 펼쳤다.

한편, 김무성 대표는 의총 인사말에서 "저는 철저히 중립"이라며 "저하고 이완구 전 대표는 투표하지 않는 게 도리인 것 같아 투표를 안 하겠다"고 공언했다. 김 대표와 이 전 대표는 실제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당 원내대표에서 신분이 바뀐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의총장에 일찌감치 도착, 의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고개를 숙이면서 오는 9~10일 열리는 인사청문회 때 협조해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 다선(7선)으로 친박계 좌장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을 비롯해 황우여·최경환·김희정 등 친박계 국무위원도 의총장에 들러 '한표'를 행사했다. 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박상은 의원 역시 투표에 빠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