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64)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결한 서울고법 형사6부(김상환 부장판사)는 국정원 사이버 심리전단이 대선 정국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글로 여론을 조작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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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2012년 8월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사이버 심리전단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시했다고 봤다. 이에 따라 국정원 직원들은 평소에 하던 댓글 게시나 트위터 활동을 '여당·여당 후보에 대한 지지'와 '야당·야당 후보에 대한 반대 활동'으로 구체화했다는 것이다.

◇ 심리전단, 야당 후보 반대글 무차별 살포 = 재판부가 선거법 위반으로 지적한 활동 내역은 '대선 정국'인 2012년 8월부터 12월까지 심리전단이 올린 인터넷 글또는 댓글 101회, 선거 관련 글에 대한 찬반 클릭 1천57회, 선거 관련 트윗이나 리트윗 13만6천여회다.

이 글들을 분석한 결과 선거운동의 목적과 방향성이 확인된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유 형별로는 안철수 후보를 반대하는 글(자질 부족 및 각종 의혹 제기, 후보 단일화 비판, 모호한 입장표명 비판, 이념성향 비판 등)이 총 4만2천857건, 문재인 후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이념성향을 비판하는 글이 1만6천387건, 민주당을 반대하는 글이 3만7천556건에 달했다.


1심이 이런 행위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봤으면서도 "특정 후보를 당선 또는 낙선시킬 목적으로 한 능동적·계획적인 행위는 아니다"라고 판단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본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해석이다.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글은 2만2천734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글은 3천122건이었다.

대 표적인 사례로는 2012년 10월 16일 국정원 직원이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에 'wan***' 아이디로 올린 "좌좀들이 선거철만 되면 떠드는 것 중에 하나가 보편적 복지로 국민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것일 게다…"라는 글을 들 수 있다. 당시 야당 측이 내놓은 보편적 복지 정책을 '좌좀'(좌파좀비)라는 표현으로 깎아내린 것이다.

또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한 시점인 같은 해 11월 24일에는 한 포털사이트에 '도도'란 닉네임으로 "어떻게 하면 안철수 사퇴가 아름다운 단일화로 해석이 되냐?ㅋㅋ"라는 글을 올렸다.

트 위터로는 "문재인 주변에 있는 비정상적 인간군상들: 민주통합당은 인간쓰레기 집합소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막말의 대가 민통당 대표 이해찬을 비롯해 정치자금법 위반을 밥 먹듯이 하는 원내대표 박지원…" 같은 글을 써 퍼뜨렸다.

또 "제가 오늘 만난 젊은이들과 택시 기사님 들은 단연코 박근혜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문재인이 되면 권력 나뉘먹기로 날이 새고, 북한에 묻지마 퍼다주기 할 것이기 때문에…" 같은 글도 있었다.

이런 트윗 글들은 심리전단이 사용한 '트윗덱' '트위터피드' 등 프로그램을 통해 인터넷 상에 순식간에 확산됐다.

원세훈, 어떤 지시 했길래 =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특정 후보를 콕 집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활동을 하라고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지만, '종북세력이 야권 연대 등을 가장해 제도권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니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지시를 계속해서 내렸다고 지적했다.

' 종북세력'의 개념이 모호한 상황에서 원 전 원장의 이런 지시는 "대한민국의 정부정책 등을 반대하고 비난하는 세력 =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냈고, 국정원 직원들은 결국 여당 후보를 지지하고 야당 후보를 반대하는 방향으로 사이버 활동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당시 원 전 원장은 '북한이 총·대선을 겨냥해 종북좌파 등을 통한 국내 선거개입 시도가 노골화될 것이므로 우리가 사전에 확실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지속적으로 했다.

재 판부는 "원 전 원장이 사이버 활동의 주제를 언급하면서 그 주제에 관한 야당의 의견을 항상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특정 주제에 대한 야당의 의견이나 관점 자체가 단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했던 경우가 많다. 요컨대 국정원장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의견이 여론으로 형성되었거나 형성될 가능성이 있을 때 이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결국 국정원 직원들의 사이버 활동은 당시 국정원장인 원세훈의 지시에 따른 것이며, 국정원장의 지시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일탈한 행위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