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마침내 '역사적 회동'을 가졌다.

11일(이하 현지시간) 파나마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 계기에 비공식 양자면담을 가진 것이다. 미국과 쿠바 정상이 회동한 것은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을 일으키기 3년 전인 1956년 이후 무려 59년만이자 1961년 국교단절 이후 53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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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동은 미국이 정상회의에 쿠바를 초청하면서 이미 예고된 '이벤트'였다고 볼 수 있다. 1962년 미국의 금수조치 이후 OAS 회원국 자격을 박탈당했던 쿠바는 2009년 자격을 회복했으나 미국의 거부로 정작 정상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런 미국이 지난해 12월 국교정상화 합의가 이뤄진 이후 쿠바에 초청장을 발송했고 이는 10일 정상회의 개막식 석상의 역사적 대면으로 이어졌다. 

2013년 12월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서 악수를 했던 두 정상은 개막식에서 만나 서로 반갑게 환영하며 손을 맞잡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 35개국 정상 등 국제사회 지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국의 역사적 화해를 상징적으로 '인증'받는 모습이 연출된 셈이다. 

이번 회동은 사전 협의된 정식 정상회담은 아니지만 지난 2년간 추진돼온 양국 국교정상화 노력의 '화룡점정'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54년만의 적대관계 청산을 정상 차원에서 직접 만나 확인하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회동에 앞서 카스트로 의장은 정상회의 연설을 통해 반세기 넘게 이어져온 대(對) 쿠바 봉쇄정책을 펴온 미국 역대 대통령들을 비난하면서도 오바마 대통령만큼은 적극 껴안는 태도를 취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은 봉쇄정책에 아무런 책임이 없기 때문에 사과한다"며 "그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역사에 갇혀있지 않겠다"며 "미국의 대쿠바 정책의 변화는 미주 지역에 대한 정책의 전환점이 도래한 것을 의미한다"고 대 쿠바 관계개선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번 회동은 현재 교착상태인 양국 관계정상화 협상을 '큰 틀에서' 풀어내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양국은 국교정상화 선언 이후 실무차원에서 세차례 접촉을 가졌으나 첫 단추에 해당하는 대사관 재개설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는 상태다. 

백악관 관계자들은 "두 정상이 국교정상화와 관련한 매우 실질적인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전했고, 한 외교소식통은 "정상 차원의 결정만 내리면 모든 문제가 끝난다"고 말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를 이란 핵협상과 함께 임기내 최대 치적으로 삼으려고 하고 있어 대승적 양보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워싱턴 외교가 일각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여의치 않지만 양국의 정상화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 수도 아바나를 방문하는 외교적 이벤트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양국 정상의 이 같은 상징적 행보에도 불구하고 국교정상화 과정이 쉽사리 마침표를 찍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의 비협조적 태도가 복병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행정명령을 제외하고 제재 해제권한을 가진 공화당이 '몽니'를 부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협상의 내용 측면에서 미국과 쿠바의 '동상이몽'이 의외로 크다는 지적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 계기에 쿠바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공식화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아직 발표는 나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