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액이 5조원이 넘는 한국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 15일 워싱턴D.C.에서 시작된다.
한국 정부의 소송 상대인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운영·매각 과정에서 무려 4조7,000억원 대의 총수익을 챙긴 '먹튀' 외국자본의 대명사로, 인수과정에서의 로비 의혹, 주가조작, 고배당 논란 등을 거쳐 엄청난 차익을 남기면서 외환은행을 하나은행에 팔아넘기고 나가 한국인들에게는 악몽과 같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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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송전은 한국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를 상대로 당한 사실상 첫 ISD인데다가, 5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이 걸려 있어 한국 정부가 패소할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일 것으로 보인다. 론스타는 그동안 한국에서 거둔 수익만큼을 소송을 통해서 받아내겠다는 심사다.
패소하게 될 경우 나라 곳간이 엄청나게 축나는 것은 물론 유사 소송을 부추길 수도 있어 국익에도 치명타를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소송 결과를 떠나서 앞으로 당분간 '론스타'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게 될 판국이다.
이에 한국 정부는 법무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기획재정부 등 6개 유관 정부부처 팀장급 실무자 등으로 팀을 꾸리고 비장한 각오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은행 산하 중재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15일 오전 미국 워싱턴D.C. 세계은행 본부 내 ICSID에서 한국 정부와 론스타 관계자 등 소송 당사자와 대리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1차 심리를 개최한다.
ISD(Investor-State Dispute)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가의 법령이나 정책 등에 따라 피해를 봤을 때 국제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오는 24일까지 열흘간 열리는 이번 심리는 소송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일반인의 참관 없이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번 소송전은 론스타가 한국 금융당국의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과 부당한 과세로 46억7,900만 달러(한화 5조1,000억 원) 상당의 손해를 봤다며 지난 2012년 11월 21일 ISCID에 중재를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1차 심리에서는 외환은행 매각승인 절차와 과세 문제를 둘러싼 론스타 측의 주장과 우리 정부의 반론을 청취하는 초기 구두심문과 관련자들의 진술을 듣는 증인심문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론스타는 국내 로펌인 세종과 미국 대형로펌인 시들리 오스틴을, 한국 정부는 태평양과 아널드 앤드 포터를 각각 소송대리인으로 내세워 첨예한 법리 공방을 전개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는 이번 소송전의 중요성을 고려해 법무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기획재정부 등 6개 유관 정부부처 팀장급 실무자 10여 명으로 구성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워싱턴 현지에 파견했다.
이번 심리에는 또 2007∼2012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승인 과정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한덕수 전 부총리, 전광우·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 금융당국이나 경제부처 수장들이 증인으로 출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소송전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소송의 성립 여부를 다투는 관할권 문제다.
벨기에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 형태의 자회사들을 통해 외환은행, 강남 스타타워 빌딩, 극동건설 등에 투자했던 론스타는 이 같은 투자 행위가 '한-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협정(BIT)'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한국 정부는 자회사들이 실체가 없는 만큼 투자협정으로 보호할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론스타는 또 이 같은 투자협정을 근거로 국세청이 스타타워 빌딩과 하나금융 매각 차익 등에 대해 8,000억 원대의 세금을 부과한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한국 정부는 론스타 자회사들이 조세회피 목적으로 만든 '도관회사(導管會社·Conduit Company)'들로서 투자협정과 무관한 만큼 세금부과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최대 쟁점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승인지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론스타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을 1조3,834억 원에 사들인 뒤 2006년부터 되팔려고 국민은행,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차례로 매각협상을 벌이다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2012년에 이르러 3조9,157억 원에 하나금융지주에 넘겨 엄청난 차익을 챙겼다.
론스타는 그러나 2007년 9월 HSBC에 외환은행 지분 51%를 5조9,376억 원에 매각하기로 계약했음에도 한국 정부가 매각승인을 지연시키는 바람에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져 2조원가량 손해를 보고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팔게 됐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론스타의 헐값 외환은행 인수 의혹에 대한 배임 사건과 외환은행-카드 합병 관련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사법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섣불리 매각을 승인해줄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1차 심리에 이어 6월 29일부터 열흘간 2차 심리가 열려 주요 쟁점에 대한 구두심문과 증인심문이 계속될 전망이다.
ISD는 국외 투자자가 특정 국가에 투자했다가 해당국의 법령이나 정책 등으로 피해를 봤을 때 국제기구의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통상 최종 판정이 내려지기까지는 1년 이상이 소요되지만 당사자들이 손해배상액에 절충하는 등 합의를 도출할 경우 수개월 내에도 중재가 이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