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IS 공습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시꺼멓다.
지난 9월 이후 러시아의 공습으로 사망한 시리아인 수는 총 1천300명(IS 조직원 381명, 알카에다 547명, 민간인 403명 등)에 이른다. 파리 테러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진압 중 숨진 경찰 군견을 대신할 어린 강아지를 프랑스 측에 선물하고, 공습용 폭탄에 "파리를 위하여"라는 글씨를 적는 등 국제군 간 협력과 단결을 의미하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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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러시아가 진정 평화를 위해 중동에 총부리를 겨누는 것이라 생각하긴 힘들다. 러시아가 폭격한 지역 대부분이 IS가 아닌 반군이 활동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 대부분이 러시아의 의도가 IS 격퇴가 아닌,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의 수호에 있다고 비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열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는 시리아 정권 이양에는 동의했으나 알 아사드 대통령의 퇴진에 대해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관건은 러시아가 우리의 효율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전략적 조정을 할 지의 여부"라며 러시아가 태도를 확실히 할 것을 촉구했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중동 지역에 손길을 뻗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러시아가 보여온 행보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2010년 초반 '아랍의 봄' 이전만 해도 러시아는 아랍국가와의 관계에서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미 미국이 중동 지역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장기적인 중동 전략을 수행해온 데다, 이미 대규모 에너지 자원을 보유한 러시아는 자국 자원 개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적극적인 중동 정책을 추진할 유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냉전 시기 동맹관계였던 시리아, 리비아,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 정도를 제외하면, 레시아의 중동 영향력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대외 에너지 정책이 변화하며 외교 대상으로서 중동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러시아는 에너지 사업이 전체 세수의 50%, 총 수출의 70%, 국가 경제 전체에서 30%를 차지할 정도로 자원 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2000년 전후엔 연간 6% 이상의 고도성장을 지속했으나, 2010년 중반에 들어 세계 경제 불황과, 미국의 셰일가스 및 오일 생산의 본격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미국 및 서유럽의 경제 제재 등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자, S&P 등 신용평가사는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에 돌입할 것을 예상하며, 국가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중동 국가 지도부의 입지에 타격을 입힌 '아랍의 봄'은,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미국, 유럽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중동산 에너지 자원은 러시아와 수출 경쟁하는 관계라 볼 수도 있지만, 에너지 대국인 러시아나 중동 국가가 상대방의 에너지 자원을 굳이 내수용으로 수입할 가능성은 없다. 중동 지역과의 친선은 미국 및 유럽과 유리한 협상을 하기 위한 카드인 셈이다.
이는 중동 국가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이미 이란 등 많은 국가가 미국, 유럽의 경제적 제재로 고통을 받고 있어, 외교 채널을 다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등 많은 국가들은 러시아와 핵발전소 건설 협력을 맺길 기대하고 있으며, 이라크는 탄화수소 개발 부문에서 러시아의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석유 생산 영향력에 대응해 공조를 이룰 수도 있다.
이미 러시아의 IS 공습으로 중동 국가의 러시아 지지가 직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가장 동조하는 국가는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후견인인 이란이며, IS 사태로 국가 전체가 위기에 빠진 이라크도 러시아를 환영하고 있다. 이라크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 줄타기 외교로 이득을 챙길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이집트, UAE 역시 온건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수니파 국가는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으며, 터키 역시 변방의 쿠르드족 문제 해결을 위해 러시아보단 미국 편에 서는 것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