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한국인 우주인이었던 이소연(38) 씨가 한국을 떠난 이유에 대해 "3년 전 미국으로 이사했다"면서 "한국의 우주인 프로그램이 종료됐기 때문에 다음 커리어(career)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11일 미국 여성 패션지 '코스모폴리탄'과의 '겟 댓 라이프'(Get That Life) 인터뷰에서 이 같이 밝혔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첫 번째 한국인 우주인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이 씨가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한국의 우주 산업의 발전을 위해 힘써 줄 것을 원해왔다.
하지만 인터뷰 발언을 감안할 때, 이 씨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가는 것만을 우주인 프로그램으로 본 듯 하며, 이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한국의 우주 산업을 위해서 공헌하겠다는 뜻은 분명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첫 한국인 우주인으로 나섰던 것도 한국의 우주 산업 발전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였다고 볼 수도 있어 보인다.
이 박사는 지난 2006년 4월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을 통해 무려 3만6천여명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주인 후보 2명 중 하나로 선발됐고, 2008년 4월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에 탑승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10일간 머무르면서 첫 한국인 우주인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어 큰 화제가 됐었다.
그러나 이후 재직하던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을 2년간의 의무 복무 기한만 채운 뒤 2012년 휴직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항공우주 분야와 전혀 관계가 없는 UC버클리 경영전문석사(MBA) 과정에 입학한 것은 물론, 미국에서 재미교포 한인과 결혼한 뒤 2014년 7월에는 항우연에서 퇴직하고 아예 미국에 눌러 앉으면서 논란이 일었었다.
이 씨는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의 한계를 깨달았다"면서 "어떤 계획이든 가족이 우선순위가 될 것"이라며 항우연 퇴사 뜻을 밝혔다.
이에 앞서 미국의 한 신문에는 '우주인이 되는 것이 평생 목표는 아니었다"며 자신이 최초의 한국 우주인이 되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항우연의 우주인 선발 과정을 "아메리칸 아이돌과 같았다"고도 했었다.
그러나 우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꿈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 씨가 국가적 염원이 담기기도 했던 한국인 우주인 배출 사업에 자원한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었다.
이 씨의 퇴사로 260억원의 혈세를 투자해 진행된 한국 우주인 배출사업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됐고, 퇴사와 동시에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신분까지 박탈당했다.
그러나 최최의 한국인 우주인인 이 씨에 대한 활용 계획이 전무했던 항우연이 오히려 이 씨의 꿈을 짓밟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씨가 한국에서 활동한 4년의 행적에 대한 항우연의 자료에 따르면, 이 씨가 수행한 우주인 관련 연구 과제는 단 4번에 불과해, 항우연이 이 씨의 우주인 귀환 이후 활용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항우연은 또 이 씨를 외부강연 235회, 과학 전시회·행사 90회, 대중매체 접촉 203회 등 총 528회에 이르는 대외 활동 일정을 소화하게 했고, 이러한 항우연의 과도한 대외 활동 요구에 이 씨가 결국 진로 고민에 빠졌다는 것.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 씨는 30여건의 우주과학 논문을 발표하고 특허도 1건 등록하는 등 역할을 해내려 했지만, 결국 한계를 느끼고 항우연과 한국을 떠났다는 지적이다.
현재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씨는 이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다음 직업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돈만 버는 직업을 원치 않으며, 나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직업을 원한다"면서 "새 직업을 찾기 위해 여러 번 지원서도 내봤지만, 그들은 나를 인터뷰하지 않고 우주항공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또 "다음 문을 여는 여성이 되고 싶으며, 특별한 상황에 갇혀 있으라고 태어나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 씨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엄마는 중학교도 안 갔고, 할머니는 읽고 쓰기도 못 했다"며 "30년 뒤 나는 박사가 됐고 첫 한국인 여성 우주인이 됐다. 60년도 안 돼 한국 여성의 역사가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그 일부분이라는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며 자신이 첫 번째 한국인 우주인이 됐다는 것을 자신의 개인적인 자부심으로 느낀다는 발언도 했다.
또 "나는 내 꿈과 열정을 따랐고, 그것이 나를 우주인이 되게 만들었다"면서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인터뷰에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하던 당시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는 내가 연구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남자들은 군복무를 마치고 나서 석사과정이나 박사과정에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 동료들 대부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99%가 남자였다"고 말했다.
이 씨는 "실험실에서 전화를 받으면 '비서 말고 연구원과 통화하고 싶다'는 말을 듣을 때가 많았고, 남성 연구원들 중 일부는 남자 연구원과 일하거나 이야기하고 싶다고 내게 직접 이야기하기도 했다"고 한국 과학계의 성차별 분위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코스모폴리탄은 이 씨와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한국의 심각한 남녀 격차(deep gender divide), 그리고 그 점이 이 씨가 우주 계획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된 이유, 하늘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기분, 그리고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삶을 위한 희망과 꿈"을 이야기했다고 요약했다.
이 잡지는 또 이 씨가 미국의 과학 전문 케이블 TV 채널인 '사이언스 채널'이 12일 방영할 '비밀 우주 탈출'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