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인 서미경 씨가 롯데그룹의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창구라는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가운데, 롯데그룹이 계속해서 서 씨의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롯데시네마가 시네마통상과 유원실업에 일감을 몰아주던 관행이 지난해 2월까지 완전히 해소됐으나, 아직 일부 계열사와 유기개발과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것 같다"면서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해명했다.

유한회사인 유기개발의 실소유주인 서 씨는 부산 본점을 비롯해 롯데백화점 잠실점, 영등포점 등에서 향리, 유원정 등의 음식점을 10년 이상 영업해오고 있는데, 오너 일가와의 특수관계가 아니면 롯데백화점 식당가에 입점할 수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유기개발은 롯데 계열사로부터 부동산을 헐값에 사들여 임대사업을 하며 수익을 올려온 회사인데, 서씨와 신격호 총괄회장과 서 씨 사이에 난 딸인 신유미 씨가 이사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문가들은 서 씨가 실소유주로 분석하고 있다. 서씨의 친오빠 서진석(59)씨가 지난해까지 명목상 대표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해당 식당들이 어느 정도의 임대수수료를 롯데백화점에 내는지 알려진 바 없지만, 통상적인 수준 미만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서 씨는 2000년대부터 유원실업·유기개발·유니플렉스 등 유통·부동산임대업체 여러 곳을 운영해 왔는데, 이 회사들을 통해 각종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검찰은 서 씨와 롯데건설의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비자금이 조성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서씨 모녀가 현재 유기개발을 통해 부동산 임대업 등은 유지하면서 롯데그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과 관련, 신 총괄회장의 비자금 창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 서씨는 지난 2002년 보유 중이던 서울 서초구 반포동 5층 건물을 롯데건설에 넘겼는데, 2012년에는 유원실업을 통해 해당 빌딩을 다시 사들였다. 롯데건설과 유원실업은 법적으로 특수관계인이 아니어서 자산거래가 공시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검찰은 외부에 거래 내역이 알려지지 않아도 되는 거래였던 만큼 비자금이 조성된 정황이 있는지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2월 신동빈 회장이 설립한 투자사 롯데액셀러레이터는 유기개발의 유기타워(강남구 삼성동 테헤란로 소재, 지하 5층, 지상 15층)에 입점해 있어 오너 일가끼리의 은밀한 거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요식업 전문기업으로 알려진 유기개발은 법인 등기부등본상으로 '요식업'뿐만 아니라 '의류도, 소매업', '관광, 레저, 스포츠업', '유가증권 매매, 투자, 컨설팅업', '슈퍼마켓 운영 및 관리업', '실내장식업', '부동산 임대 매매 및 분양업'을 하는 기업으로 소개되어 있다.

유기개발의 유기타워에 입주한 롯데엑셀러레이터는 청년 창업가들에게 초기 투자금을 지원하는 회사로, 신동빈 회장의 사재 100억원, 롯데쇼핑 등 주요 계열사 출연분 200억원으로 자본금을 마련해 만든 회사다. 신 회장의 최측근으로 수사선상에 오른 황각규 롯데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도 이 회사 임원이다.

이 회사는 현재 유기빌딩 12~15층 4개 층을 사용하면서 보증금 4억5천800만원의 임대차계약(2년간 사용)을 맺었는데, 월세액은 확인되지 않았다. 롯데 측은 “주변 시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만 밝히고 있다.

특히 관심을 모으는 것은 서씨의 딸 신유미 씨가 지난해 9월 유기개발의 이사로 등록됐는데, 이 시기는 신동주·동빈 형제의 ‘왕자의 난’이 수면 위로 떠오른 때였다는 것이다. 이후 롯데액셀러레이터가 유기타워에 입주한 점을 감안할 때, 서씨 모녀가 신동빈 회장 편에 선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롯데엑셀러레이터의 유기빌딩 입주와 관련, “주변 시세보다 비싸게 입주했다면 신 회장 측에 배임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롯데 측이 유기타워의 공실(空室)을 막기 위해 입주했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공정거래 관련 법률은 사실혼 배우자를 포함한 특수관계인에게 현저하게 유리한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유기개발은 롯데와 관련 없는 회사이기 때문에 내부거래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니플렉스도 유원실업과 유기개발과 비슷한 의혹을 받고 있다. 서씨는 유니플렉스를 통해 서울 방배동 사옥을 비롯해 고급 빌라, 서울 신사동 건물, 경남 김해시 일대 수만평의 토지 등 수백억원대의 부동산을 관리한 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스포츠조선에 "신 총괄회장이 서씨 모녀에게 땅과 지분을 증여하는 형태로 많은 지원을 해왔다"며 "부동산만 놓고 보면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 보다 많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서씨 모녀가 보유한 유원실업과 유기개발, 유니플렉스 등이 사실상 신격호 총괄회장의 차명회사라고 보고 롯데 계열사와 거래내역 및 자금흐름을 조사 중이다.

한편, 아역 배우 출신인 서 씨는 다수의 영화에 출연해오다 1977년 제1회 미스롯데 선발대회를 통해 미스롯데에 선발된 이후 롯데 전속모델로 활동했으며, 1981년 돌연 자취를 감춘 뒤 연예계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배우자가 따로 있는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의 셋째 부인으로 등장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고, 1983년 신격호와의 사이에 딸 신유미까지 두었다. 현재 신유미는 롯데호텔 고문이다. 혼인 신고는 되어 있지 않으며, 대외 활동도 자제하면서 33년째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서 씨는 신 총괄회장의 호적에 오르지 못해 법적인 가족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서씨 모녀가 보유한 회사에 대해 이뤄진 롯데 그룹 차원에서의 일감 몰아주기와 각종 특혜 논란에서도 한 동안 자유로울 수 있었다.

서 씨는 롯데그룹 내에서는 백화점과 영화관 매점 사업권 등 알짜 사업을 소유하고 있으며, 한국 롯데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 주식 0.1%를 갖고 있다.

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은 롯데쇼핑 주식 0.09%과, 계열사 롯데푸드 주식 0.33%, 코리아세븐 주식 1.4%를 보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씨와 신 고문이 가진 지분이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경영권 다툼에도 일정 부분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