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경기후퇴 우려가 커짐에 따라 오는 21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유럽중앙은행(ECB)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통상적인 0.25%포인트 인상은 기준금리를 점진적으로 올리겠다는 시장과의 기존 약속을 지키는 것이겠지만,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오른 물가를 잡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0.5%포인트 인상이라는 '빅스텝'을 밝으면 안 그래도 에너지난에 따른 경기둔화를 겪고 있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지역의 경제가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최근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유로존 지역이 향후 1년 이내 경기후퇴에 빠질 것이라는 응답 비율이 45%로, 한 달 전 30%에서 15%포인트나 올랐다.

코로나19 대확산(팬데믹) 이후 경기 회복세가 점차 사그라지고 겨울철 에너지 위기라는 현실이 피부로 와닿음에 따라 경기후퇴 전망이 짙어지고 있다.

게다가 유럽이 경기후퇴를 경험하더라도 미국과 달리 인플레이션이 완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의 성격이 달라서다. 미국은 팬데믹 기간 정부가 쏟아낸 막대한 경기부양책으로 인해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측면이 있다면,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데 따른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ECB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든다고 하더라도 에너지 가격이 높게 유지되는 한 물가가 잡힐 가능성이 크지 않은 셈이다.

도이체방크의 한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후반 경미한 경기후퇴가 닥치더라도 인플레이션 압력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여기에 더해 21일 ECB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 결정을 좌우할 몇 가지 요인들을 소개했다.

우선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자료에 기반해"(data dependent) 판단하겠다고 말해왔는데, 그 자료가 계속 오르고 있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EU

또한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최근 경제 전망을 수정하면서 올해와 내년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7.6%, 4.0%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내년까지 물가가 ECB 목표치(2%)의 2배 수준의 상승률을 이어간다는 것을 가리킨다.

 

물가가 기대 이상으로 오르고 있으니 이번 통화정책 회의에서 0.5%포인트 인상이라는 결정이 나올 수도 있다.

다음으론 ECB의 신용도이다. 현재 행동이 굼뜨다는 비판을 받는 ECB가 빅스텝 행보를 보이면 대외적으로 인플레이션과 싸움에 전력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번에 0.25%포인트를 인상하겠다고 한 약속을 저버리는 꼴이 돼 앞으로 시장과 의사소통에서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세계 각국의 통화긴축 기조도 염두에 둬야 할 요소다.

연준이 다음 주 통화정책 회의에서 시장의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면 올해 들어서만 2.25%포인트를 인상하게 된다.

ECB는 연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리 인상에 소극적인 자세여서 그 여파로 유로화 가치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진 상태다.

ECB가 빅스텝을 밟으면 유로 가치가 바닥을 다지고 유로 약세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세를 억제할 수 있다.

ECB의 다음번 통화정책회의가 7주 후라는 점도 부담된다. 이번에 통상적인 인상만 했을 때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가 없으면 2달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정례 회의 전 긴급회의를 소집하면 금융시장에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