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가 1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양자간 장관급 협상을 열면서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가 본격화했다.
전쟁의 직접 당사국이면서도 정작 이 자리에 참여하지 못한 우크라이나로선 자국의 명운이 걸린 역사적 협상을 일단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협상 참여를 강하게 주장했던 우크라이나로서는 불안하고 긴장된 채로 협상장 문 앞에서 두 열강의 대표단이 나오길 기다려야 한다.
가뜩이나 미·러 주도의 협상 구도를 놓고 유럽의 반발이 드센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논의하는 출발점에 당사국이 빠진 상황을 두고 국제사회의 비판과 우려가 작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아무리 신속한 종전을 바란다고 해도 적어도 우크라이나의 요구 조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우크라이나의 종전 협상 조건은 러시아에 뺏긴 영토의 반환과 러시아의 철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등을 통한 지속적 안보 보장,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처벌 등으로 요약된다.
3년간 이어온 전쟁의 양상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요구사항은 조금씩 수위가 바뀌어왔다.
전황이 불리한 시기엔 나토 가입을 선결 조건에서 뺄 수 있다고 할 때도 있었고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이 벌어졌을 땐 '푸틴과는 협상 불가'라는 조건을 못 박은 적도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유화적 태도를 드러낸 건 영토 반환 문제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루한스크와 남부 헤르손 및 자포리자 일부에 더해 2014년 러시아에 강제병합된 크림반도까지도 모두 돌려받겠다는 게 우크라이나의 요구였다.
그러나 영토 완전수복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시 시인한 바 있다.
점령지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지는 않되 지금의 점유 상태를 현실로 인정하고 협상에 나설 수 있다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언급해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 약 20%를 점령하고 있다.
이에 나토 가입을 통해 서방의 '안보우산' 아래 들어서는 것을 다시 협상 개시 조건으로 내세웠다. 일부 영토를 양보해야 한다면 러시아의 재침략을 막기 위해 나토 가입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나토 가입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명확하다. 애초부터 점령지의 러시아 영토화와 더불어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를 협상 조건으로 내세운 러시아가 나토 가입을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전격적 협상 타결로 조속한 종전이라는 임기 초 성과를 내려는 트럼프 행정부는 협상의 최대 쟁점인 나토 가입 문제를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는 좀 더 넓은 개념으로 '안보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2014년 크림반도에 이어 우크라이나 동남부 땅 등 영토의 20%를 러시아에 뺏긴 우크라이나로선 러시아가 언제든 휴전을 깨고 다시 침공할 거란 우려를 거두지 않는다.
안보보장 수단은 나토 가입이 아니더라도 평화유지군의 우크라이나 주둔 등 좀 더 유연하게 고려해 볼 수 있다는 게 우크라이나의 최근 입장이다.
러시아의 협정 파기에 대비한 안보 안전판 마련이 우크라이나로선 협상 조건의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셈이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안보보장이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통 비전을 공유했다. 그런 보장이 없는 '취약한 휴전'은 러시아의 또 다른 기만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평화유지군엔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 우크라이나의 희토류 산업에 미국이 투자하면 '인계철선'이 되므로 나토 가입에 버금가는 사실상 안보보장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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