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향해 "해임은 빠를수록 좋다"며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이는 파월 의장이 전날 무역관세로 인해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은 직후다.

트럼프는 17일(목)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파월의 해임은 빠를수록 좋다!"며 "그는 항상 '너무 늦고 틀렸다(TOO LATE AND WRONG)'"고 주장했다. 이어 "다른 중앙은행들처럼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미국 내 인플레이션은 앞으로 다른 국가들보다 더 가파르게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는 트럼프가 각종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한 영향이다.

트럼프는 과거에도 파월 의장의 임기가 끝나는 2026년 5월까지는 교체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번 발언은 이를 번복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같은 날 블룸버그 TV에 출연한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연준의 금리 결정 독립성은 반드시 지켜야 할 보석 상자 같은 것"이라며 연준의 자율성을 옹호했다.

파월 연준 의장

(파월 연준의장. 자료화면)

트럼프의 잇따른 관세 발표로 인해 최근 금융시장은 큰 변동성을 겪었다. 특히 장기 국채 수익률이 오르고 달러가 약세를 보이는 이례적인 현상까지 나타났다.

이날 트럼프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기 직전, 연준도 "즉각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월은 ECB처럼 진작 금리를 낮췄어야 했으며, 지금이라도 반드시 인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파월 의장은 전날 시카고 연설에서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이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준은 올해 두 차례 회의 모두 금리를 동결했으며, 트럼프는 지난 1월에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에 금리 동결에 동의한다"고 말한 바 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정해 이른바 '공급 충격'에 대응하는 것은 특히 어려운 과제다. 공급 충격은 물가를 상승시키면서 동시에 수요를 위축시켜 실업률을 높이는 이중고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금리를 올리면 실업이 더 악화될 수 있고, 반대로 금리를 내리면 인플레이션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

캐나다중앙은행도 이날 일곱 차례 연속 금리 인하 이후 처음으로 금리를 동결하면서 "무역 불확실성이나 무역 전쟁의 영향을 통화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 발표는 기업과 소비자 심리에도 냉각 효과를 주고 있다. 여러 기업들은 "비용 구조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투자를 미루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트럼프는 2018년 파월을 연준 의장으로 지명했으며, 2022년 조 바이든 대통령이 그를 재지명하면서 상원에서 80표의 찬성으로 연임이 확정됐다. 하지만 트럼프는 곧 파월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며 2019년 무역 전쟁 당시 금리를 충분히 빨리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해왔다.

파월 의장은 전날 연설에서 "연준의 금리 결정 독립성은 워싱턴과 의회에서도 널리 지지받고 있다"며 정치적 압력에 영향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다. 우리는 오직 경제에 근거한 판단만을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그간 다른 바이든 행정부 임명자들에 대해서도 해임을 시도해왔으며, 정책적 이견만으로 해임이 가능한지를 놓고 법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의 법무부는 1935년 규제가 독립성을 보장하는 선례를 뒤집기 위해 대법원에 이를 제소했다.

파월은 이와 관련해 "연준에까지 그 판결이 적용될 것이라 보지 않는다"며 "상황을 매우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트럼프가 6년 전 파월 해임을 검토했을 당시, 파월은 스티븐 므누신 당시 재무장관에게 "만약 해임을 시도한다면 법적으로 맞설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파월의 강경한 입장은 연준 의장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결단으로 해석된다. 1970년대의 고물가 사태 이후, 연준은 정치로부터 독립적인 금리 정책 수립을 지켜왔으며, 이는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의 운영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1972년 대선을 앞두고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아서 번스 당시 연준 의장에게 금리 완화를 압박했던 사실도 백악관 녹음파일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이후 1980년대 초반 경기 침체를 겪으며 물가가 안정된 후, 연준은 금리 정책에서 상당한 자율권을 확보하게 됐다.

오늘날 많은 투자자들은 연준의 독립성을 장기적인 물가 안정과 국채 투자 리스크 완화의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