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태생의 로버트 프레보스트 추기경, 교황 레오 14세로 선출
기존 유력 후보였던 이탈리아 추기경 파롤린을 제치고 교황직에 오르다
- 미국인 로버트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함
- 프란치스코 교황의 포용성과 겸손의 비전을 이어가되, 더 강력한 조직 운영 능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
- 교황직을 남미 또는 제3세계 출신이 이어가기를 바라는 흐름 속에서 '세계 시민'으로 주목받음

시스티나 성당의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화 아래, 로버트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자신의 이름이 낭랑하게 울려 퍼지자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목요일 아침, 교황 선출을 위한 투표 결과가 낭독되는 중이었다. 투표가 거듭될수록 시카고 출신 추기경에게 향하는 지지가 점점 더 강해졌고, 초기 유력 후보였던 이탈리아 출신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제자리에 머물렀다.
세 명의 추기경에 따르면, 프레보스트는 자신이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를 이끄는 제267대 교황이 될 가능성이 커졌음을 실감한 듯한 모습이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그날 오후, 133명의 추기경 가운데 89명의 지지를 받아 교황 당선 요건을 충족했고, 성당 내부에는 붉은 옷을 입은 추기경들의 박수가 울려 퍼졌다. 눈을 감고 있던 프레보스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역사적인 순간을 받아들였다.
"그런 상황에 놓이면 인간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라고 뉴어크 대교구의 조셉 토빈 추기경은 말했다.
미국 출신 교황의 등장은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안겼다. 교황직은 세계 최강국 국민에게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오랜 가정이 깨졌다. 바티칸 광장에 모인 군중, 전 세계 언론, 그리고 배팅 시장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선출 직전까지도, 추기경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비전을 이어갈 수 있으면서도 가톨릭 전통을 존중하고, 바티칸의 재정 문제를 관리할 역량을 갖춘 인물을 원했다. 그들이 찾은 인물이 바로 69세의 로버트 프레보스트였다.
'세계 시민'으로 떠오른 교황
프레보스트는 미국 국적이지만, 페루의 칙라요 지역에서 오랜 시간 선교사로 활동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명성을 쌓았고,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다문화 사목자였다. 바티칸에서 일한 경력도 있지만, 부패와 스캔들에 깊이 연루되지 않았다.
반면 파롤린 추기경은 교황청 국무원장으로서 12년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오른팔 역할을 했지만, 외교관 경력이 주를 이루며 목회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중국과의 논란 많은 협정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우리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라고 스페인 출신 크리스토발 로페즈 로메로 추기경은 말했다.
변화의 바람
프란치스코 교황은 폐렴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부활절 월요일에 선종했다. 그의 장례식과 콘클라베 준비를 위해 전 세계에서 추기경들이 로마에 모였는데, 이들은 교황의 유산인 '지리적 다양성'을 반영한 집단이었다. 70개국에서 온 이들은 영어를 주된 소통 언어로 사용했고, 문화와 관심사도 매우 다양했다.
유럽 추기경들이 AI의 윤리 문제를 토론하면, 아프리카 추기경들은 "기술을 만들기 위해 우리 자원이 약탈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몽골에서 온 추기경은 유목민 텐트에서 미사를 드린 이야기를 공유해 모두를 감동시켰다.
많은 추기경들이 프레보스트를 '남미의 유산'으로 보고 지지를 모았다. 그는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임명되었고, 바티칸 내 주교성 장관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결정적 순간들
프레보스트는 콘클라베 전날, 동료 추기경들 앞에서 연설을 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했던 '시노달리타스(공동합의성)'에 대해 강하게 언급했다. 에콰도르 추기경 루이스 카브레라 에레라는 "그는 함께 걷고, 함께 논의하고, 함께 결정하는 교회의 방향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콘클라베가 시작되자, 첫 번째 투표에서는 파롤린이 약 40표 이상으로 선두였지만, 이후 표가 정체됐다. 반면 프레보스트는 점차 표를 얻으며 격차를 줄였다. 점심 식사 시간에는 추기경들 사이에 열띤 논의가 오갔다.
뉴욕 대교구의 티모시 돌란 추기경은 이탈리아 추기경들이 자신에게 "그 '로베르토'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분위기가 바뀌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교황 레오 14세의 탄생
마지막 투표는 단 한 번이면 충분했다. 프레보스트는 100표 이상을 얻어 교황으로 선출됐다. 그는 이전 콘클라베에서 프란치스코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돌란 추기경은 전했다.
가장 고위 추기경이던 파롤린이 라틴어로 물었다.
"당신은 교황으로서의 선출을 받아들이십니까?"
"받아들입니다," 프레보스트는 대답했다.
"당신의 교황 이름은 무엇입니까?"
"레오."
그 순간, 파롤린은 조용히 그의 반지를 입맞췄다. "파롤린은 신사였다"고 싱가포르의 윌리엄 고 추기경은 말했다.
잠시 후, 레오 14세는 '눈물의 방'에서 교황복으로 갈아입고, 흰 연기가 굴뚝에서 피어올랐다.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나타난 그의 모습에,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은 환호했다. 몇몇 성직자들은 미국 국기를 흔들며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