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94)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마침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한 이유를 직접 밝혔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자신과 그렉 에이블의 업무 속도 차이를 체감했다"며 "결정적인 순간은 없었지만, 결국 나이가 들었음을 느꼈다"고 털어놨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단독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버핏은 인터뷰에서 "사람이 늙는 정확한 시점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며 "90세까지는 나이가 든다는 느낌이 없었지만, 90세 이후로는 확실히 달라졌다. 그건 되돌릴 수 없는 변화"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최근 균형 감각을 잃는 일이 잦아지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거나 신문 글자가 흐릿하게 보이는 등 노화 증상을 체감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변화는 2024년부터 점차 그의 결심으로 이어졌고, 지난 5월 3일 열린 연례 주주총회 마지막 순간, 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렉 에이블이 그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라고 깜짝 발표했다. 다만 그는 이사회 의장직은 계속 유지할 예정이다.
버크셔의 차기 수장으로 지명된 그렉 에이블(62)은 1999년 아이오와 기반 유틸리티 회사 미드아메리칸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통해 버크셔에 합류했다. 이후 에너지 부문을 성공적으로 키운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에는 비보험 부문 총괄 부회장직에 올랐고, 2021년에는 버핏의 후계자로 공식 지목됐다.
버핏은 "정말 뛰어난 인재는 매우 드물다. 비즈니스는 물론, 자본 배분,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 활동에서 그렇다"며 에이블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버핏은 1965년, 34세의 나이에 당시 침체 상태였던 뉴잉글랜드 직물업체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하며 경영을 시작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회사를 보험, 철도, 유틸리티, 소비재까지 아우르는 대기업으로 키웠다. 현재 버크셔는 40만 명에 가까운 직원을 둔 미국 대표 복합 기업으로, 애플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의 대형 주식도 대거 보유 중이다.
하지만 기업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CEO가 갖춰야 할 역량 또한 변했다. 이에 대해 버핏은 "10시간 동안 에이블이 해내는 일의 양과 내가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격차는 점점 더 커졌다"며 "경영진 교체, 조직 지원 등 그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일하는지를 보며 내가 자리를 넘겨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그가 CEO직을 평생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버핏은 "내가 가장 유능한 CEO라는 확신이 있을 때까지만 그 자리를 지키겠다고 생각해왔다"며 "그 기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나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매일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으며 건강 상태도 양호하다고 밝혔다. "매일 기분이 좋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며 일부 신체 기능이 둔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투자 능력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강조했다. "과거 20년, 40년, 60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동일한 투자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져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 나의 장점인데, 이는 나이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에이블 역시 마찬가지로 냉정한 투자 판단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버크셔의 현금 보유액이 급증하면서 차기 대형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에이블도 투자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버핏의 CEO 퇴임은 올해 12월로 예정돼 있으며, 에이블 체제는 8개월 뒤 공식 출범하게 된다. 그러나 버핏은 은퇴 후에도 사무실 출근을 멈출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집에 앉아 드라마만 보고 있진 않을 것"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여전히 관심사는 그대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