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올해 열린 세계 개발자 콘퍼런스(WWDC)에서 인공지능(AI) 분야에서의 의미 있는 진전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0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AI 기술이 기술 업계의 핵심 화두로 부상하는 가운데, 애플은 여전히 경쟁사들에 비해 뒤처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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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로고. 자료화면)

월요일 열린 WWDC 기조연설에서 애플은 개발자들이 자사 '파운데이션 모델(Foundation Models)'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공개했다. 이 조치는 장기적으로 애플 기기에서 더 원활하게 작동하는 AI 앱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발표는 이미 예견된 내용이었으며, 콘퍼런스 전반에 걸쳐 AI보다는 기존 운영체제(OS)의 디자인 개선이나 기능 업그레이드에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

특히 애플은 소프트웨어 외관을 더욱 유려하게 만드는 '리퀴드 글라스(Liquid Glass)' 디자인 업데이트를 강조했다. 하지만 AI 관련 기능들은 대부분 경쟁사들이 이미 제공 중인 수준의 점진적 개선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UBS의 애널리스트 데이비드 보그트는 "이번에 발표된 AI 기능은 대부분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이고, 혁신적인 요소는 부족했다"고 전했다.

시리(Siri) 업그레이드는 여전히 먼 이야기

애플은 지난해 화제를 모은 '애플 인텔리전스(Apple Intelligence)' 서비스를 공개했지만, 실제 출시는 지연되었고 기대만큼의 성과도 보여주지 못했다. 핵심이었던 AI 기반 시리(Siri) 개편 역시 아직 진행 중이다. 애플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총괄 크레이그 페더리기는 "시리의 향후 변화에 대해서는 내년에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AI로 강화된 시리가 시장에 나오기까지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빠르면 2026년 말쯤에야 출시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경쟁사인 구글은 이미 2024년에 AI 기반 어시스턴트를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한 바 있다.

AI 확산에서 뒤처진 애플, 그 원인은 비즈니스 모델?

애플이 AI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진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자사의 하드웨어 중심 비즈니스 모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알파벳), 아마존, 메타 플랫폼스 등은 AI 기술을 자사 클라우드 기반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애플은 AI를 오직 자사 기기(아이폰, 맥 등)를 통해 전달해야 하며, 이들 기기는 현재도 애플 전체 연간 매출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 '온디바이스(On-device) AI'가 스마트폰이나 PC의 구매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애플은 자체 클라우드 기반 AI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외부 기업과의 협력이 절실하다. 지난해 애플은 오픈AI와 손잡았고, 최근에는 구글의 제미니(Gemini)와의 협력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AI가 하드웨어 업그레이드를 이끌 수 있을까?

애플이 다른 빅테크 기업들과 비교해 AI 인프라(예: Nvidia 칩 등)에 대한 투자 규모가 적다는 점도 한계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외부 파트너와의 협력이 불가피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애플의 AI가 새로운 하드웨어 구매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모펫네이션슨의 크레이그 모펫은 "AI가 새로운 아이폰 수요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애플 투자자들이 믿고 있던 가장 중요한 성장 논리는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발표된 AI 기능으로는 다음 세대 아이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여, 투자자들은 최소한 2026년 가을까지 기다려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퀴드 글라스'만으로는 AI 시대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잠재우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