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히피 문화의 상징으로 귀환한 'ID. Buzz', 고가 정책·무역전쟁·리콜 사태로 미국 데뷔 좌절

미국 캘리포니아 헌팅턴비치. 서핑보드로 장식된 무대에 오르며 흥겨운 사이키델릭 록 음악이 울려 퍼지던 2년 전, 폭스바겐 경영진 토마스 셰퍼는 60년대 히피 문화의 상징이었던 버스의 부활을 선언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WSJ)이 보도했다. 

전통적인 박스형 디자인과 투톤 컬러를 갖춘 이 차량은 'ID. Buzz'라는 이름으로 전기차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당시 "드디어, 드디어"라는 환호 속에 공개된 이 버스는 이후 열광을 얻지 못했다. 폭스바겐이 미국 시장 공략의 상징으로 삼았던 이 차량은 현재 미국 내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판매 실적과 함께 조용히 실패작으로 전락하고 있다.

폭스바겐 전기버스 버즈

(폭스바겐 전기버스 버즈. 폭스바겐 웹사이트)

WSJ에 따르면, 전기버스 ID. Buzz는 출시가 2년 이상 지연됐고, 예산을 초과했으며,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직후 미국에 첫 고객 인도가 이루어지는 악재까지 겹쳤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후 수입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했고, 전기차 보조금도 철회했다.

여기에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250마일도 채 되지 않으며, 미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컵홀더가 부족해 도착지인 미국 항구에서 추가 장착되는 일도 발생했다. 결국 올해 4월, 3열 시트 폭이 너무 넓어 2개 좌석에 3명이 앉을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에 수입된 모든 차량이 리콜됐고, 판매는 두 달간 중단됐다.

가격도 걸림돌이다. 시작 가격은 약 6만 달러로, 많은 소비자들이 외면했다. 출시 초기부터 3천여 대가 미국 딜러에 인도됐지만, 지난 6월 말까지 실제 판매량은 564대에 그쳤다. 심지어 일부 모델은 7만 달러 이상 가격이 책정되면서 '대중의 차'라는 폭스바겐 이름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텍사스 댈러스에 거주하는 유럽차 마니아 오트리 맥비커는 "ID. Buzz를 꼭 사고 싶었지만, 7만2천 달러라는 말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전기차 감가율을 고려하면 첫해에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질 텐데 그 가격은 정당화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실패를 단순한 판매 부진으로만 보지 않는다. 수십 년간 폭스바겐을 괴롭혀온 유럽 중심의 제품 개발, 내부 경쟁, 느린 의사 결정 구조 등 구조적인 문제들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특히 ID. Buzz는 독일 하노버 공장에서 생산되는데, 이 공장은 노동비가 높아 단가가 미국의 2.5배에 이른다. 폭스바겐이 미국 차타누가 공장에서 생산하지 않은 것도 독일 니더작센 주 정부가 회사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고, 본사가 위치한 하노버를 유지해야 하는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ID. Buzz 프로젝트는 디젤게이트 이후 폭스바겐이 브랜드 이미지 회복을 위해 본격적으로 전기차에 투자하면서 본격화됐다. 2016년 CES에서 허버트 디이스 당시 경영진은 "새로운 폭스바겐을 만들겠다"며 Budd-e 콘셉트를 공개했다. 그는 일론 머스크와 테슬라 모델 3의 영향력에 고무돼 대중 전기차로서의 Buzz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회사 내부 경쟁 구조도 문제였다. 폭스바겐 그룹 내 포르쉐, 아우디 등 각 브랜드는 자체 기술 개발을 위해 경쟁하며 중복 투자와 의사 결정 지연을 초래했고, 결국 ID. Buzz는 미국 시장에 2024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게다가 미국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오류들도 속출했다. 브레이크 경고등 색상이 규정을 위반했고, 3열 좌석 폭도 문제였다. 5,600여 대가 리콜 대상이 됐다.

미국 소비자들의 감성을 사로잡기 위한 외장 디자인도 실패했다는 평가다. 기본 모델은 흰색, 회색, 검정색만 제공돼 향수를 자극하지 못했고, 투톤 색상은 고가 트림에만 제공됐다. 폭스바겐은 이에 딜러를 통해 보급형 모델에 비닐 랩핑을 권장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는 과거 미국 시장에서의 반복된 실패와 유사하다. 2000년대 초 미국 소비자들이 SUV로 눈을 돌릴 때 폭스바겐은 세단 중심의 유럽 전략을 고수했고, 디젤게이트 역시 유럽 기술을 미국 환경 기준에 맞추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폭스바겐은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 수정에 착수했지만, 올해 주주총회에서 CEO 올리버 블루메는 ID. Buzz보다 새로운 SUV 브랜드 '스카우트'를 중심에 놓고 20억 달러 규모의 공장을 사우스캐롤라이나에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히피 문화의 상징으로 돌아온 전기 미니버스는 결국 오늘날 미국 시장에서 정체성도, 가격 경쟁력도 갖추지 못한 채 흔적 없는 실패로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