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사상 최대 규모의 관세 인상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제는 성장세를 이어가며 생산, 무역, 투자 등 주요 지표에서 강한 회복력을 보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 보도했다. 

세계 경제는 올해 초부터 시행된 대규모 미국발 관세 인상 조치에도 불구하고 예상 외의 탄탄한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과 소비자 모두 불확실성 속에서도 적응 능력을 발휘하며, 글로벌 경제는 강한 흐름을 유지 중이다.

JP모건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세계 경제는 연율 기준 2.4% 성장해 장기 평균 성장률 수준을 기록했다. 무역량은 예상보다 강하게 반등했고, 유럽과 미국의 주식시장도 사상 최고치로 회복했으며,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고 있다.

무역전쟁에도 흔들리지 않는 투자와 소비

골드만삭스는 전 세계적으로 투자, 제조업 고용, 소비 지출, 경제 활동 등이 전반적으로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업들은 팬데믹 기간 중 경험을 바탕으로 공급망을 재편했고, 미국과 독일 등 주요 국가들은 정부 지출 확대를 통해 경제 심리를 지탱하고 있다.

미국 서부 무역항

(미국 서부 무역항. 자료화면 )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경제학자 앤젤 탈라베라는 "일부 기업은 향후 관세 인상이 더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재고를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이자벨 슈나벨 이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불확실성이 경제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말했다.

생산기지 다변화와 현지화 가속

10여 년 전부터 본격화된 세계화에 대한 반발은 기업들로 하여금 수출 시장 인근에서의 현지 생산에 더 의존하도록 유도해 왔고, 이번 관세 인상이 이러한 전략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계기가 됐다.

독일의 팬 제조업체 EBM 팝스트는 미국에 제3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며, 인공지능 데이터 센터 수요 증가 덕분에 미국 매출이 향후 수년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CEO 클라우스 가이스되르퍼는 "미국 고객들이 아시아산 부품 대신 현지 생산을 요구하면서 미국 시장에서 20~30% 추가 성장 여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무역량 증가와 중국의 우회 수출 전략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1분기 글로벌 상품 무역량이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 상품 무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2%에서 +0.1%로 상향 조정했다.

유럽 제조업은 최근 몇 달간 회복세를 보이며, 신규 주문과 수출 전망, 향후 생산 지표 등이 3년 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미국 수출 감소와 25% 관세 부담에도 불구하고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역시 예상보다는 적은 타격을 입었다. 올 1~5월 미국으로의 수출은 전년 대비 10% 감소했지만, 전체 수출은 6% 증가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로의 수출이 늘어난 덕분이다. 특히 베트남, 태국, 멕시코 등으로의 수출이 급증해, 중국산 제품이 제3국을 거쳐 우회 수출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올해 1~5월 미국의 동남아 수입은 전년 대비 28% 증가했으며, 아시아 전체로부터의 수입은 10% 증가해 5,820억 달러에 달했다.

미국 소비자와 기업, 관세 충격 일부 흡수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총재 수전 콜린스는 "미국 가계의 순자산이 여전히 역사적 평균 이상으로 높아 소비가 지속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일부 수출업체는 관세 인상분을 가격에 전가해도 미국 소비자가 이를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는 4월부터 10% 관세가 추가됐지만, 미국 내 판매가는 1kg당 약 42달러에서 43~45달러로 상승했음에도 올해 첫 4개월간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9% 증가했다. 생산자 단체는 마이애미 오픈 테니스 대회 후원 및 뉴욕 제츠 미식축구팀과의 협업 등 마케팅 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유럽산 수입도 올해 1~5월 기준 37% 급증해 4,210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4월과 5월에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는 미국 기업들이 일부 비용 부담을 흡수할 수 있는 높은 마진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관세 충격, 지연된 효과 가능성도

일부 경제학자들은 기업들이 관세 시행 이전에 선주문한 재고로 인해 당장의 충격이 미미해 보이지만, 향후 수개월 내 무역량이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랜드는 "브렉시트처럼 즉각적인 충격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누적된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며 현재 상황을 낙관하기엔 이르다고 경고했다. 그는 "10% 수준의 관세는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30~50%에 달하면 전면적인 무역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위원장도 "이러한 고율 관세는 EU와 미국 간 교역을 사실상 동결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