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보다 가성비, 외식보다 쿠폰... 소비심리 위축 뚜렷
팬데믹 이후 한동안 과감하게 지갑을 열던 미국 소비자들이 다시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물가 상승과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절약'이 일상화되면서, 고급 외식은 줄고, 일반 브랜드나 대량 구매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그냥 질러보는 소비'를 완전히 접었다고 말한다.

미국 상무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소비 지출은 사실상 정체 상태다. 치폴레(Chipotle), 크로거(Kroger), 프록터앤갬블(P&G) 등 주요 소비재 기업의 CEO들도 소비자들이 '지출 여력이 줄어들었다'거나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는 평가를 내놨다.
"이제는 꼭 필요한 것만 산다"
오레오, 리츠, 캐드버리 등을 제조하는 몬델레즈(Mondelez)의 CEO 더크 반 데 푸트는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크다"며 "전 세계 간식 매출은 늘었지만 미국 시장에서는 큰 폭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여행, 주택 개조, 외식 등에서 과감히 돈을 쓰던 미국 소비자들은 이제 다시 '경제적 불확실성'이라는 단어를 체감하고 있다. 육류 가격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 중이며, 커피에는 50%에 달하는 관세가 예고되었고, 포드(Ford)도 차량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
P&G는 세제, 화장지, 샴푸 등 생필품 전반에서도 소비 둔화 조짐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CEO 존 몰러는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 이민 정책, 인플레이션, 관세 등 불확실성이 쌓여 있다"고 말했다.
"자기 돈을 관리하는 데 하루 4시간 써요"
P&G 재무 책임자 안드레 슐튼은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미국 전역에서 소비 둔화가 나타난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은 식료품을 '많이 사서 아껴 쓰거나', '작게 사서 당장 지출을 줄이거나' 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절약에 나서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하루 평균 4시간을 '돈 걱정'에 쓴다. 이는 사실상 '파트타임 수준'의 시간이다.
LA 거주 건축가 케빈 얼빈 켈리는 "이전에는 부부 데이트 비용으로 150달러를 쉽게 썼지만, 이제는 처가에 놀러가는 것이 '휴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 같으면 딸이 조른다면 백팩을 새로 사줬겠지만, 이제는 '작년 거 그냥 써'라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생일파티 초대장에도 '선물은 사양한다'는 문구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요약했다. "이젠 '그냥 사보는 소비'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고급 브랜드 대신 할인 쿠폰, 소량 구매 대신 대용량
크로거는 고객 방문 횟수는 늘었지만, 장바구니는 가벼워졌다고 보고했다. 고객들은 다시 쿠폰을 오려 쓰고, 술 등 사치성 소비재는 외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크로거 CEO 론 서전트는 "고객들이 분명히 '가성비'를 따지고 있다"고 말했다.
외식도 양극화되고 있다. 연 수입 15만 달러 이상 고소득층은 올리브가든(Olive Garden) 같은 체인 레스토랑을 찾고 있지만, 저소득층은 아예 외식을 줄이고 있다. 치폴레는 매출이 줄었고, 도미노피자는 1+1 행사로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다.
디트로이트 예술관 인턴이자 대학생인 첼시 홀린스(26)는 캠핑 여행으로 여름휴가를 대체하고, 알디(Aldi)에서 고기값을 아끼며, 달러제너럴과 월그린 앱에서 쿠폰을 비교한다고 전했다. "이전엔 쿠폰 안 썼어요. 근데 이제는 안 쓰면 안 돼요."
"집마다 휴지와 치약이 산처럼 쌓여 있다"
마케팅 이사 아만다 베르디노(39)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구독 앱을 분석해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들을 해지했다. 그녀는 "창고를 보니까 화장지, 치약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더라"며 "쓸데없이 자동구매만 해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곧 둘째 출산을 앞둔 키아라 카르니에프스키(31)는 "지출을 60~70% 줄였다"고 밝혔다. 스킨케어, 고급 식자재는 물론, 하루 5달러 커피 한 잔에도 죄책감을 느낀다는 그녀는 "예전에는 '인생은 짧다, 누려야지' 했지만, 지금은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미국 경제는 심각한 수학 문제를 안고 있어요. 모든 게 비싸지는데, 임금은 그대로거든요."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