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하락이 제공한 기회, 휴전 압박 카드 될까

세 해 전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을 줄이기 위해 '원유 가격 상한제'라는 전략을 택했다.

러시아산 원유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대신, 인도 등 제3국이 계속 구매하되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만 거래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에 육박하던 시기, 이 방식은 인도·중국 등 구매국엔 '대박'이었지만 러시아 경제를 무너뜨리거나 푸틴 대통령의 전쟁 의지를 꺾는 데는 실패했다.

이제 유가가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67달러로 떨어진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기회를 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WSJ)가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그는 인도가 러시아 원유를 사들이는 데 대해 25%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으며, 최대 구매국인 중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에도 같은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조치는 수십 년 만에 최악의 미·인도 외교 갈등을 촉발했다.

러시아 경제의 '심장' 겨냥

러시아의 원유·석유제품 수출은 하루 5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군 병력 모집 보너스 지급과 방산업 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전쟁 자금줄이다. 우크라이나 전 경제장관 티모피 밀로바노프는 "제재가 철저히 집행되고 몇 달간 지속된다면, 푸틴 측근들이 현금 고갈을 심각하게 우려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원유 시추공

(러시아 원유 시추공. 자료화면)

유럽연합은 지난달 러시아산 원유 판매 허용가를 시장가보다 **15% 낮게 유지하는 '롤링 상한제'**를 도입했고, 러시아의 '그림자 선박단'에 대한 제재도 확대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엘리나 리바코바는 "2차 제재는 러시아-중국 무역을 실질적으로 둔화시킬 수 있다"며 "양국이 우회 경로를 찾기 전까지는 타격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묘한 이해관계: 인도·중국의 반응

2022년 이후 러시아산 원유 최대 수입국은 중국(47%)과 인도(38%)다. 인도는 원유를 수입한 뒤 정제해 상당량을 유럽에 재수출하고, 중국은 러시아와 전략적 동맹 관계를 유지하며 금융·기술 지원을 제공한다.

인도 모디 정부는 초기엔 조용히 러시아산 구매를 줄일 의사를 보였지만, 트럼프의 공개적 압박으로 사안이 국내 정치적으로 민감해졌다. 카네기재단의 에반 파이겐바움은 "모디 총리조차 미국 요구에 굴복하는 건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인도는 미국이 여전히 러시아산 우라늄을 수입하고, EU가 러시아산 LNG를 대량 구매하는 점을 들어 '이중 잣대'라고 반발하고 있다.

원유 가격·세계 경제의 변수

가스프롬네프트 전략 책임자 출신 세르게이 바쿨렌코는 러시아 원유·석유제품 수출이 절반으로 줄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푸틴은 서방보다 고통을 오래 버틸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반면 전 부통령실 안보보좌관 필 고든은 "지금은 유가가 낮아 러시아산 물량을 줄여도 가격 급등 위험이 적다"며, 러시아 원유 구매국에 대한 관세 부과뿐 아니라 러시아·중국 은행 제재, G7의 상한가 인하, 그림자 선박단 단속 강화가 병행돼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재정 압박과 대응

러시아의 '국부펀드'는 방산 투자와 전쟁 장려금 지급으로 유동자산의 80%를 소진했다. 재정적자는 확대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푸틴이 국방비를 줄이는 대신 사회복지를 삭감해 전쟁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드론 공격으로 러시아 정유시설과 저장시설을 타격하며 수출량 감소를 유도하고 있다. 러시아가 저장 용량을 초과하면 생산 감축과 유정 폐쇄가 불가피하다. 일부 분석가는 폐쇄된 유정의 절반은 재가동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전망: 휴전 압박 카드가 될까

트럼프 행정부가 계획하는 2제재와 군사 지원 확대가 단기적으로 러시아의 재정에 충격을 줄 수 있지만, 푸틴의 장기전 의지를 꺾기엔 불확실성이 크다. 전 백악관 러시아 담당 에릭 그린은 "푸틴의 인내심 과시는 일부 허세지만, 우크라이나 집착은 진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