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민주당의 전통적 후원 기반에 균열 조성

지난해 대선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민주당과 실리콘밸리 간 '동맹'에 가장 큰 타격을 입혔다. 관계 회복은 쉽지 않은 과제가 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중도좌파 성향 무역 단체인 '진보상공회의소'(Chamber of Progress)의 애덤 코바체비치 최고경영자는 현재 '부부 상담가' 같은 역할을 자처하며 민주당 의원, 기술업계 종사자, 전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실리콘밸리 경영진이 왜 당에서 등을 돌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고 있다.

민주당에 꾸준히 정치자금을 지원해 온 일부 경영진은 당 지도부가 실리콘밸리를 단순한 '돈줄'로만 보고 산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내놓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다. 오픈AI의 샘 알트먼, 벤처투자가 마크 안드리센 등 테크 엘리트들의 지지 이탈은 30년 만에 최저 지지율을 기록한 민주당에 또 하나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샘 알트만
(오픈 AI 샘 알트만. 자료화면 )

코바체비치 전 구글 임원은 "이건 큰 문제"라며 "민주당이 반(反)혁신 정당이 되는 것은 자살골"이라고 경고했다.

비영리단체 오픈시크릿(OpenSecrets)에 따르면 지난 선거 주기에서 통신·전자 부문 정치자금의 약 80%가 민주당에 흘렀으며, 구글·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형 기술기업에서도 비슷한 비율이 나타났다. 그러나 암호화폐·인공지능 규제 강화에 집중한 바이든 행정부 정책에 반발한 일부 인사들은 규제 완화와 AI 지원을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 정책에 호응하며 민주당과 거리를 두고 있다.

"민주당, 혁신 정당 이미지 잃었다"

캘리포니아 개빈 뉴섬 주지사 등 민주당 인사들의 참모를 지낸 브라이언 브로코는 "민주당은 한때 혁신과 최첨단의 정당이었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내줬다"며, 민주당이 산업계에 친(親)혁신 이미지를 설득하지 못하면 중요한 재정 기반을 잃고 선거에서 불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다수 기술업계 일반 종사자들은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핵심 경영진 일부의 이탈은 당 지도부를 긴장시키고 있다.

샘 알트먼은 최근 민주당이 혁신·기업가 정신 지원에서 멀어졌다고 비판하며 자신을 "정치적 무소속"이라고 표현했다. 한때 트럼프를 히틀러에 비유했던 알트먼은 지금은 규제 완화·AI 지원 정책을 내세운 트럼프의 '총애받는 CEO' 중 한 명이 됐다.

민주당, 관계 회복 시도

코바체비치의 '경청 투어'는 민주당이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조치 중 하나다. 올해 초 하킴 제프리스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실리콘밸리 출신 샘 리카르도 하원의원은 주요 후원자들과 만나 관계 회복 방안을 논의했다.

샘 리카르도 의원(전 산호세 시장)은 트럼프의 관세·이민 공격·대학 연구비 삭감을 싫어하는 중소 기술기업 지지를 민주당이 되찾을 수 있다고 보고, 연구비 증액·고급 기술 인력 이민 확대를 포함한 혁신 의제를 발표했다.

실리콘밸리 기반 민주당 전략가 쿠퍼 테보는 2024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기술업계 지지의 30~40%를 잃었지만 일부는 회복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감세·규제 완화 정책으로 이익을 얻는 창업가들이 많아 전략 수정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로 칸나(캘리포니아) 하원의원, 리카르도 의원과 함께 활동 중이다. 두 의원은 하원 내 대표적인 모금 실력자로, 실리콘밸리 업계와 두터운 인맥을 보유하고 있다.

트럼프와 기술업계의 밀착

2025년 7월 말 열린 AI 정상회의에서 트럼프는 중국을 이기는 기술 전략을 제시하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수출 규제와 AI 모델 표준 설정을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접근'이라 비판했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를 비롯한 업계 인사들은 이 자리에서 정부 관계자들과 교류하며 축제 분위기를 이뤘다.

트럼프는 암호화폐 산업에도 적극적이다. 이는 민주당 의회에 난제를 던진다. 규제 법안을 반대하면 혁신 기술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찬성하면 트럼프 가족의 암호화폐 사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이해충돌은 없다고 밝혔다.

공화당 인사 매트 리라는 "실리콘밸리에서 공화당, 심지어 트럼프까지 지지하려는 분위기를 이렇게 강하게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자금 지원 슈퍼 PAC 네트워크는 6월 말 기준 1억4천만 달러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내년 중간선거에서 업계 반대 정치인을 겨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거에는 민주·공화 양당 모두를 지원했으나 최근에는 공화당 쪽에 무게가 실린다.

엘론 머스크는 2024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와 공화당에 약 3억 달러를 기부했으나, 현재 트럼프와 결별하고 제3당 창당을 선언했다. 캘리포니아 암호화폐 기업 블록데몬 CEO 콘스탄틴 리히터는 "양당 모두에 실망해 머스크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며, 민주당에 대해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태"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