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독립성 보호 신호 보낸 대법원과 충돌 가능성

워싱턴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 이사 리사 쿡(Lisa Cook) 해임을 추진하면서, 미국 대통령 권한과 중앙은행 독립성 사이의 충돌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모기지 사기 의혹"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 증거나 법적 기소는 없는 상태다. 쿡 이사는 "대통령이 법적 근거 없이 나를 해임할 권한은 없다"며 즉각 반발했고, 변호인 애비 로웰은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번 사건은 연방 대법원까지 갈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 독립성과 '사유 해임' 논란

연준법은 이사들에게 14년 임기를 보장하며 "대통령이 사유가 있을 경우" 해임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사유(cause)'의 범위는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다. 전통적으로는 직무 태만, 비효율성, 불법 행위 등이 해당한다고 해석돼 왔다.

연준

(미 연준. 자료화면)

예일대 로버트 포스트 교수는 "연준 이사가 뇌물을 받는다면 해임이 가능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문제는 '사유'가 어디까지냐는 것"이라며, 단순한 의혹 제기만으로 대통령이 임의로 이사를 해임한다면 "보호 조항이 무의미해진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배경과 연준 정책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연준의 금리 인하 지연을 비판해왔다. 금리 인하는 단기적으로 경기 부양과 국가 부채 이자 부담 경감 효과가 있다. 쿡 이사의 해임은 트럼프가 연준 이사회에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 인사 빌 풀테(FHFA 국장)가 쿡 이사의 모기지 신청서를 근거로 의혹을 제기했지만, 쿡은 민사·형사 책임을 지지 않았다.

법적·제도적 파장

이번 사건은 미국 헌정사에 새로운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1935년 대법원 판례(Humphrey's Executor)는 대통령의 임의 해임 권한을 제한해 독립 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해왔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 보수 다수는 대통령 권한 확대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특히 지난 5월, 대법원은 노동관계위원회(NLRB)와 인사보호위원회(MSPB) 위원 해임을 허용했지만, 연준에 대해서는 "역사적·제도적 독립성이 독특하다"며 예외를 시사했다.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반대의견에서 이를 "맞춤형 연준 예외"라 비판하며, 다른 독립기관과 동일한 법적 토대 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향후 전망

만약 법원이 트럼프의 손을 들어줄 경우, 연준 이사 해임 기준은 사실상 대통령의 재량으로 좁혀질 수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 금리 인하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연준의 독립성과 정책 신뢰성 약화라는 리스크를 낳을 수 있다.

국내외 금융시장과 학계는 이번 사안을 미국 통화정책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갈림길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으며, 결과에 따라 미국 금융 질서와 글로벌 경제에도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