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수호와 독재 타파 공로 인정... 트럼프 "정치가 평화를 이겼다"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8) 가 오랜 기간 민주주의를 촉진하고 독재에 맞서 싸워온 공로로 2025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노벨위원회 위원장 예르겐 바트네 프리드네스는 "마차도는 어둠이 짙어지는 시대에도 민주주의의 불씨를 지켜온 용감하고 헌신적인 평화의 투사"라며 그녀를 "평화의 용기 있는 옹호자"로 평가했다.
이번 발표는 오랫동안 노벨 평화상을 갈망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일종의 타격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연설과 회의에서 자신이 이 상을 받지 못한 점을 종종 불만스럽게 언급해왔다.
특히 이번 주 초 트럼프가 이스라엘-하마스 간 휴전 합의를 중재한 직후 발표된 수상 결과는, 노벨위원회가 정치적 압력에 흔들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평화상 후보 추천은 통상 1월에 마감된다.)
백악관 대변인 스티븐 청은 X(전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도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전쟁을 종식시키며, 생명을 구할 것"이라며 "노벨위원회는 평화보다 정치를 택했다"고 반발했다.
2025년 평화상 후보로는 수단의 '긴급대응단(Emergency Response Rooms)' 자원봉사자들, 러시아 야권 인사 율리아 나발나야,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등이 거론됐다.
하지만 위원회는 마차도를 선택했다. 그녀는 트럼프 행정부와, 특히 쿠바계로서 라틴아메리카 민주화 문제에 깊이 관여해온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오랜 유대 관계를 맺어온 대표적 친미 민주화 인사다.
프리드네스 위원장은 "마차도는 민주주의의 도구가 곧 평화의 도구임을 보여주었다"며 "그녀는 시민의 기본권이 보호되고 목소리가 존중받는 미래의 희망을 상징한다. 그 미래에서 사람들은 마침내 평화롭게 살 자유를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25년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
마차도는 지난 25년간 오직 하나의 목표를 위해 싸워왔다 -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회복이다.
그 여정의 전반부는 1999년부터 2013년까지 집권한 고(故) 우고 차베스의 권력 강화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었고, 후반부는 그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아래서 무너진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것이었다. 마두로 정권은 두 차례의 전국선거를 부정선거로 치렀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미국 등 여러 외국 정부는 선거의 공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수상은 마두로 정부에 큰 타격이다. 마두로는 러시아, 이란, 중국 등 미국의 경쟁국들과 밀착하며 대립각을 세워왔고,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카리브해에 군함을 파견하며 마약 밀매 조직을 겨냥한 압박을 강화했다. 미국은 마두로를 마약 테러 혐의자로 지목하고, 올해 그의 체포 현상금을 5천만 달러(오사마 빈 라덴보다 많음) 로 상향했다.
"투표소마다 QR코드로 부정 감시"
최근 몇 년 동안 마차도는 차베스의 지지 기반이었던 빈곤 지역과 오지 마을을 직접 돌며 분열된 야권을 결집시켰다. 그러나 2024년 7월 대선에서 정부는 그녀의 출마를 금지시켰고, 마차도는 대신 야권의 에드문도 곤살레스 후보를 지지했다.
그녀는 수십만 명의 자원봉사자를 조직해 전국 투표소에 감시 인력을 배치했고, 투표 결과를 QR코드가 포함된 개표표로 기록했다. 이들 데이터에 따르면 곤살레스가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마두로는 스스로의 승리를 선포했다. 이후 부정선거 의혹과 시위가 이어졌고, 약 25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체포됐다. 곤살레스는 스페인으로 망명했지만, 마차도는 은신 상태로 베네수엘라에 남았다.
그녀는 2024년 대선 직후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지금 은신 중이며, 마두로 독재정권으로부터 내 생명과 자유, 그리고 동포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숨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권위주의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모든 이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는 자유로워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테러와 폭력만이 남은 정권"
이후 마차도는 은신처에서 화상회의를 통해 연설을 이어가며, 민주적 이행의 희망을 살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정권의 강경 진압과 인권 탄압으로 야권의 거리 시위는 거의 사라진 상태다.
올해 초 그녀는 깜짝 등장한 야권 집회에서 연설을 마친 뒤 무장 세력의 공격을 받았고, 수행원 한 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그녀도 체포됐으나, 국제적 비난이 일자 곧 석방되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마차도는 "이제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며 "과거엔 베네수엘라 전역을 돌아다녔지만, 지금은 은신처에서 화상회의로 세상과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세 자녀는 모두 해외에 거주 중이다.
서방 외교관들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그녀의 은신처를 알고 있지만, 체포할 경우 국제사회 반발을 초래할 것을 우려해 "넘지 말아야 할 선(red line)"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8백만 명 탈출한 나라, 무너진 자원대국"
마두로의 12년 통치 아래 베네수엘라는 인권 유린, 부패, 경제 파탄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에서 몰락했고, 약 8백만 명이 국외로 탈출했다. 이는 현대사에서 가장 대규모의 인구 이주 중 하나로 평가된다.
마차도는 공개적으로 마거릿 대처 등 강인한 여성 지도자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으며, 자유시장경제와 민간기업의 역할을 강조해왔다. 그녀의 부친 엔리케 마차도는 한때 베네수엘라 최대 금속회사를 이끌었으나, 사회주의 정부에 의해 국유화된 뒤 파산했다.
그녀는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결국 마두로 정권은 내부 분열과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통제할 힘이 없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은 오직 공포뿐입니다."
노벨위원회는 "마차도의 이름이 자유와 평화를 위한 투쟁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