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 내 이례적 강경 질의... 트럼프 행정부, 대법원서 방어에 몰려

미국 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권한을 두고 심리한 자리에서, 트럼프가 직접 임명한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Neil Gorsuch) 대법관이 정부 측을 향해 예상 밖의 강도 높은 질문을 던지며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의회가 외교·전쟁 권한까지 대통령에 넘길 수도 있다는 말인가?"

6일(목) 열린 변론에서 고서치는 정부 측 변호인에게 "대통령이 외국과의 관계에서 광범위한 권한을 가진다는 이유로 관세가 가능하다면, 그 논리대로라면 의회가 외국과의 무역뿐 아니라 전쟁 선포 권한까지 대통령에게 넘길 수도 있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연방대법원
(연방 대법원. 자료화면)

이번 사건은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이 트럼프에게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부여했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이 법은 본래 '국가비상사태'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제한적 경제 조치를 허용하는 법안으로, 하급심 법원들은 일제히 트럼프 측의 주장을 기각했지만, 관세 조치 자체는 소송 진행 중에도 유효한 상태로 유지됐다.

"관세는 의회의 고유 권한"... 로버츠·배럿도 회의적 시각

보수 성향이 우세한 현 대법원(보수 6명, 진보 3명)에서도 이날은 트럼프 행정부에 불리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관세는 미국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며, 이는 의회의 핵심 권한(core power)"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보수 대법관인 에이미 코니 배럿 역시 IEEPA의 해석을 놓고 "트럼프의 권한 확대 논리가 과도하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고서치 "대통령 권한 확대는 일방향적... 의회 권한 회복 어렵다"

고서치는 이날 여러 차례 정부 측 논리를 밀어붙였다.

그는 "일단 의회가 권한을 넘기면, 다시 돌려받기 어렵다"며 "이 과정은 결국 대통령에게 권력이 지속적으로 집중되는 일방향적 권력 이동(one-way ratchet)"이라고 경고했다.

법률전문가 **애슐리 에이커스(홀랜드앤드나이트 로펌)**는 이 발언을 "이번 심리의 핵심 순간"으로 평가했다.

그는 "고서치의 질문은 의회가 거부권을 무력화하지 않고는 권한을 되찾을 수 없다는 점을 부각시켰다"며 "대통령 중심 체제로의 불가역적 전환 위험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DOJ도 인정... "IEEPA 해석 따르면 '기후 비상사태'로 유류세 인상도 가능"

좌파 성향 싱크탱크 루스벨트 연구소의 정치학자 토드 터커는 "고서치가 지적한 대로, 법무부 역시 대통령의 IEEPA 해석대로라면 차기 대통령이 '기후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내연기관차에 고율의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임명했지만 늘 충성하지는 않는다"

고서치는 트럼프가 2017년 임명한 보수 대법관이지만, 그는 과거 트럼프 행정부와 여러 주요 사안에서 대립한 전례가 있다.

2018년에는 이민자 강제 추방법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트럼프 정부의 입장을 거부했고, 2020년에는 성소수자 차별 금지 판결을 작성하며 보수 진영의 예상을 깼다.

터커는 "고서치는 행정부의 권한을 경계하는 '반관료주의자'이지만, 동시에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는 '대통령주의자'"라며, "이번에는 어느 쪽의 고서치가 등장할지 불분명했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큰 반전의 주인공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