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에 대한 시장의 불안이 커지면서, 한때 AI 붐의 최대 수혜주로 떠올랐던 오라클이 급격한 조정을 맞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9월 초 오픈AI와의 초대형 계약 소식으로 주가가 30% 넘게 치솟았던 오라클은 불과 두 달 만에 상승폭을 모두 반납한 것은 물론, 고점 대비 30% 넘게 밀리며 뚜렷한 냉각 국면에 접어들었다.

오라클 주가가 단기간에 이렇게 큰 폭으로 상승한 뒤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은 상장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AI 열풍의 상징처럼 보였던 기업이 다시 '증명해야 하는' 위치로 돌아온 셈이다.

오라클
(오라클 로고. 자료화면)

폭증한 매출 백로그 뒤에 숨은 '오픈AI 리스크'

오라클 주가를 밀어 올린 핵심 동력은 9월 초 공개된 3,170억 달러 규모의 매출 백로그였다. 당시 시장은 이를 AI 인프라 수요 폭증의 증거로 받아들였다. 이후 월스트리트저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백로그의 상당 부분은 오픈AI와의 단일 대형 계약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오픈AI의 재무 전망은 녹록지 않다.

컴퓨팅 비용 급증으로 인해 오픈AI는 2028년 영업손실이 74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는 예상 매출의 75%에 해당하는 적자 규모다. 오라클이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를 지속하려면 오픈AI의 재무적 지속 가능성이 필수적이지만, 시장에서는 이 점을 가장 큰 리스크로 보고 있다.

부채 1,000억 달러 돌파... 빅테크 중 가장 높은 수준

급증하는 AI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오라클은 공격적으로 자금을 차입하고 있다.
최근 기업은 180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으며, 이로 인해 총 부채는 1,000억 달러를 넘어서 빅테크 중 투자등급을 유지하는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부채를 보유하게 됐다.

문제는 오라클의 현금흐름이 이미 빠듯하다는 점이다.
AI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과 배당, 자본지출을 맞추기 위해 오라클은 앞으로도 수십억 달러의 추가 차입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무디스와 S&P는 오라클의 신용등급을 정크 등급으로 강등할 가능성을 점차 높여 보고 있다.

데이터센터 리스까지 급증... 2028년 조정부채 3,000억 달러 예상

오라클의 부채 위험은 단순한 채권 차입에 그치지 않는다.

오라클이 입주할 예정인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임대업자들은 이미 380억 달러를 빌려 두 개의 데이터센터 캠퍼스를 짓고 있으며, 이는 향후 오라클이 부담해야 할 임대료의 상당한 증가를 의미한다.

모건스탠리 분석에 따르면 오라클의 조정 부채(adjusted debt) - 임대부채를 포함한 전체 재무부담 - 는 2028년 약 3,00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오라클은 더 이상 AI 기대감만으로 주가를 유지하기 어렵고, 실질적인 재무건전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CDS 스프레드 급등... 채권시장도 불안 확산

최근 몇 주간 오라클 채권의 부도 위험을 대비하는 5년물 CDS(신용부도스와프) 스프레드가 두 배 이상 증가해 약 1.1%포인트까지 치솟았다.
절대 수치로는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시장이 오라클 리스크를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일부 장기 투자자들은 보유 채권을 헤지하기 위해 CDS를 매입하고 있으며, 다른 투자자들은 AI 인프라 투자 광풍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베팅하는 수단으로 CDS를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라클은 자신 있다"지만... 시장은 더 신중해져

오라클은 투자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오픈AI 외에도 메타 등 비(非) 오픈AI 고객과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장기 계약이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또 오라클 클라우드 부문 수장 클레이 마구이르크는 CNBC에서
"오픈AI는 오라클에 연 600억 달러 수준을 5년간 지급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AI 경쟁에서는 "승자가 여러 명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은 설득되지 않은 분위기다.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이 여전히 초입에 있어 불확실성이 높은 데다, 오라클의 재무 부담이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AI 열풍의 상징처럼 보였던 오라클이 지금은 "증명해야 할 기업"으로 돌아왔다.
향후 몇 년간 성과와 재무 구조가 실제로 개선될 수 있을지가 오라클의 평가를 좌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