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전환 흐름 '리셋' 국면 진입

유럽연합(EU)이 2035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던 사실상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방침을 철회하기로 하면서, 최근 수년간 추진해온 친환경 정책에서 가장 큰 후퇴를 단행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16일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16일(현지시간), 자동차 업계의 강한 반발을 반영해 2035년 이후에도 일부 비(非)전기차 판매를 허용하는 방안을 공식 제안했다. 이 조치는 EU 회원국 정부와 유럽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최종 확정된다.

EU
(EU, 전기차 정책 전면 수정. 자료화면)

독일·이탈리아 자동차 업계 압박 반영

이번 정책 전환은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 자동차 산업의 핵심 국가들이 규제 완화를 요구해온 데 따른 것이다. 집행위는 완전한 전기차 전환 대신, 시장 현실을 반영한 보다 유연한 규제 체계로 방향을 틀었다.

새 방안에 따르면 EU는 2035년까지 신차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을 2021년 대비 9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는 기존의 '2035년 이후 신차 100% 무공해' 규정보다 완화된 기준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연료 연장형 차량 허용

개정안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와 연료를 사용하는 주행거리 연장형 차량의 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이 테슬라와 중국 전기차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 반영됐다.

폭스바겐은 "배출을 보상하는 조건하에 내연기관 차량을 허용하는 것은 실용적이며 시장 상황에 부합한다"며 "새로운 CO₂ 목표안은 전반적으로 경제적으로 타당하다"고 평가했다. 폭스바겐은 소형 전기차 지원과 2030년 목표의 유연성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환경단체 "전통 산업의 비극적 승리"

반면 환경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도미닉 핀(Climate Group)은 "이번 조치는 전통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전환을 이긴 비극적 결과"라며 "규제 완화는 수십억 유로를 투자한 기업들에 필요한 정책 안정성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배출 상쇄 조건 강화

새 제안에 따르면 완전히 감축되지 않은 배출량은 EU 내 저탄소 철강 사용, 합성 e-연료, 농업 폐기물이나 폐식용유 기반 바이오연료 사용 등을 통해 상쇄해야 한다.

또한 승용차의 경우 2030~2032년 사이 3년의 유예 기간을 두고 CO₂ 배출을 2021년 대비 55% 감축하도록 했다. 밴(상용차)의 2030년 감축 목표는 기존 50%에서 40%로 완화된다.

포드 EV 후퇴와 맞물린 정책 변화

이번 EU의 결정은 미국 포드가 195억 달러 규모의 손상차손을 인식하고 여러 전기차 모델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직후 나왔다. 포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와 미국 내 전기차 수요 둔화를 이유로 들었다.

증권사 제프리스는 "전기차 전환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지만, '전면적 전환'에서 '유연한 규제 체계'로 이동하는 전환점"이라며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직선적인 전기화가 아니라 재조정 국면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중국과의 격차 우려 지속

유럽 자동차 업계는 중국 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와 중국산 전기차의 유럽 내 공세로 이중 압박을 받고 있다. EU가 부과한 중국산 전기차 관세도 제한적인 효과에 그쳤다는 평가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의 힐데가르트 뮐러 회장은 "이번 제안은 산업을 지원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으며, 친환경 철강과 재생연료 사용이라는 새로운 부담만 추가했다"고 비판했다.

"유연성보다 경쟁력 약화 우려"

전기차 업계는 목표 완화가 충전 인프라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유럽이 중국에 더욱 뒤처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폴스타 CEO 미하엘 로슈렐러는 "100% 무공해에서 90%로의 후퇴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이는 기후뿐 아니라 유럽의 경쟁력을 해칠 것"이라고 말했다.

청정교통단체 T&E의 윌리엄 토츠 사무총장은 "중국이 질주하는 동안 EU는 시간을 벌고 있다"며 "내연기관에 집착해서는 유럽 자동차 산업의 부활은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 차량·소형 EV 지원 확대

집행위는 전체 신차 판매의 약 60%를 차지하는 기업 차량의 전기차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했다. 2030년과 2035년 국가별 목표는 1인당 GDP를 기준으로 설정되며, 이행 방식은 각국에 맡긴다.

또한 EU 내에서 생산되는 소형 전기차를 위한 새로운 규제 카테고리를 신설해, 규제를 완화하고 CO₂ 감축 목표 달성 시 추가 크레딧을 부여하는 방안도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