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900억유로(약 1,050억달러) 규모의 대출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 보도했다.
다만 대출 재원으로 러시아의 동결 자산을 활용하는 방안에는 회원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분열 드러난 EU...러시아 자산 활용 놓고 끝내 합의 실패
WSJ에 따르면, EU 정상들은 2026~2027년 동안 우크라이나에 900억유로를 대출하기로 결정하며, 이를 "결정적 시점의 재정적 생명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동결된 최대 3,000억달러 규모의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을 대출에 활용하는 방안은 내부 반대에 막혔다.
이는 러시아에 어느 수준까지 맞설 것인지에 대한 EU 내부의 깊은 분열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트럼프 중재 구상 속 '협상 테이블' 노리는 유럽
EU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 자금 지원과 러시아 자산에 대한 통제력을 지렛대로 삼아, 종전 협상에서 발언권을 확보하길 기대하고 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우선 외교 과제 중 하나다. 그러나 지금까지 트럼프 행정부와 크렘린은 유럽을 협상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해 왔다.
"우리는 약속했고, 이행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우리는 합의했고, 2026~2027년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900억유로 제공 결정을 승인했다. 우리는 약속했고, 이행했다"고 강조했다. EU 측은 이번 대출이 러시아에 서방의 지원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4월 자금 고갈 우려...대출로 재정 공백 메운다
EU는 우크라이나가 내년 4월이면 예산과 무기 구매 자금이 고갈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추산에 따르면 이번 대출은 2026~2027년 우크라이나 재정 소요의 약 3분의 2를 충당할 수 있다. 나머지는 다른 서방국가들과 IMF 지원으로 메워질 전망이다. EU는 대출 이자 비용을 자체 부담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대출이 없을 경우 내년 봄부터 드론 생산을 대폭 줄이고 러시아 본토에 대한 장거리 타격 능력을 포기해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벨기에 반대가 결정타...법적 리스크 우려
러시아 자산 활용이 무산된 핵심 배경에는 벨기에의 반대가 있었다. 벨기에는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의 약 3분의 2를 보관 중인 금융기관 유로클리어(Euroclear)를 두고 있다. 바르트 더 베버 벨기에 총리는 "법적 소송이 성공할 경우 국가 재정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러시아가 보복을 경고하며 자신 개인에게도 위협을 가했다고 밝혔다.
오르반의 '양보'로 타협 성사
한때 거부권을 행사했던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EU 예산을 담보로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에 동의하면서 타협의 길을 열었다. 오르반 총리 역시 러시아 자산 활용에는 강하게 반대해 왔다.
"자산은 계속 동결"...향후 활용 여지는 남겨
EU는 러시아 자산을 계속 동결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러시아가 전쟁 배상을 거부할 경우, 동결 자산을 우크라이나 대출 상환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새 대출 구조가 마련되면서, 벨기에가 향후 자산 활용에 동의할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러시아엔 '환영할 소식' 될 수도
러시아 자산을 직접 사용하지 않은 결정은 트럼프 행정부와 크렘린 모두에 긍정적 신호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해당 방안을 "절도"라고 비난해 왔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 재건과 미·러 공동 경제 프로젝트에 활용하는 구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U는 지난주 러시아 자산을 제재 하에 무기한 동결하기로 결정했으며, 러시아가 전쟁 배상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해당 자산을 우크라이나 재건에 쓰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