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LA)가 약 40년 만에 처음으로 임대료 규제를 대폭 강화한다. 오는 2월부터 다가구 아파트 대부분에 대해 연간 임대료 인상률을 최대 4%로 제한하면서, 주거비 급등에 시달리는 세입자 보호와 투자 위축 우려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0일 보도했다. 

40년 만의 임대료 상한 강화

WSJ에 따르면, LA시는 2월 초부터 물가상승률에 따라 연간 임대료 인상 한도를 1~4%로 제한한다. 이는 지난 40년간 적용돼 온 기존 상한선 3~8%에서 크게 낮아진 수치다. 시 당국은 이번 조치가 주거비 부담 완화와 퇴거 방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캐런 배스 LA 시장
(캐런 배스 LA 시장. 자료화면)

이번 정책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임대료 규제 논쟁'의 한복판에 LA를 다시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격 통제가 세입자 보호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신규 주택 공급과 투자를 위축시키는 역효과를 낳는지를 둘러싼 논쟁이다.

정치권 "주거비가 핵심 문제"

Karen Bass LA시장은 최근 조례 서명식에서 "국가와 주, 그리고 우리 도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며, 그 중심에 주택 가격이 있다"며 "이번 조치는 앞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조례는 시의회에서 12대 2로 통과됐으며, 한 명은 기권했다. 세입자 단체와 주거권 활동가들은 더 강력한 규제를 요구했지만, 시는 타협안을 택했다.

적용 대상과 예외

새 규제는 모든 주택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단독주택과 1970년대 후반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한 신규 세입자가 입주할 경우에는 여전히 시장 가격으로 임대료를 책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A 전체 다가구 주택의 약 75%에 해당하는 약 65만1천 가구가 이번 규제의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노후 주택 소유주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전망이다.

임대료 격차와 시장 현실

LA의 임대료 규제 적용 아파트 평균 월세는 약 1,800달러 수준이다. 반면 비규제 시장 임대료는 평균 2,700달러로, 규제 주택보다 크게 높다. 이는 전국 평균 임대료 약 1,750달러(규제·비규제 포함)를 웃도는 수준이다.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임대료 통제가 장기적으로 주택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고 투자를 위축시킨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투자자들은 이미 LA를 규제가 까다로운 시장으로 인식하며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 위축 우려

LA의 다가구 주택 투자 중개업체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이미 LA 주택 시장을 기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인구조사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첫 8개월 동안 LA 광역권의 신규 주택 허가 물량은 인구가 5분의 1에 불과한 텍사스 오스틴 광역권보다도 적었다.

임대인 단체들은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 보험료 상승이 겹치며 소규모 임대인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호소한다. 한 단체 대표는 "수천 번의 작은 상처로 서서히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세입자 "완벽하진 않지만 진전"

반면 세입자들은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2013년부터 2베드룸 아파트에 거주 중인 게임 디자이너 프라이드 세인트 클레어는 "싸움은 끝나지 않았지만, 이번 조치는 분명한 승리"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해고를 당한 상황에서 임대료 인상 억제가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전국적 파장

LA의 이번 결정은 확인된 사례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은 2022년 강력한 임대료 규제를 도입한 뒤 신규 다가구 주택 허가가 급감했고, 이후 규제를 완화했다. 반면 뉴욕과 매사추세츠 등 다른 지역에서는 정치권이 임대료 규제를 둘러싸고 엇갈린 입장을 보이고 있다.

LA의 임대료 상한 강화는 세입자 보호라는 명분과 주택 공급·투자 위축이라는 우려 사이에서, 미국 대도시 주거 정책의 향방을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로 작용할 전망이다.